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2004년 대한매일 신춘문예 평론 부문 심사평 본문

심사평, 추천사 등

2004년 대한매일 신춘문예 평론 부문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2. 12. 5. 08:45

강정구씨의 세상을 떠도는 목어들은 차창룡의 시 세계를 풍자의 범주 안에 넣고 차창룡만의 특별한 풍자의 양식을 찾아내려고 애를 쓴 글이다. 텍스트의 고유한 경험을 최대한 되살리는 방식으로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평론의 길이라면 강정구씨는 평론의 ABC를 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문학의 고유한 경험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경험이지 주제의 그것이 아니다. 주제를 가지고 경험의 세계를 휘젓다 보니 글이 겅중거리고 성길 수밖에 없다. 김용하씨의 비윤리적 세계의 재현과 윤리적 풍경의 기원은 시적 직관을 통해 순간적으로 구현되는 창조적 공간으로서 시를 이해하고 그 창조적 공간에서만 가능한 인간 삶의 근원적인 조화의 경험을 읽겠다는 의욕이 두드러진 글이다. 그 의욕 속에서 씨는 이성복의 시가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부터 출발해 상호 이해의 윤리적 풍경의 세계에 도달해가는 기나긴 장정을 인칭의 변주를 통해 조명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형식에 끈덕지게 매달렸다는 것이 개성의 표지가 될 수도 있지만, 글을 도식적으로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밋밋하고도 부정확한 문장들 역시 씨가 넘어야 할 돌산이다. 이원동씨의 떠도는가족, 주변부 삶을 보듬는 결곡한 서사은 공선옥의 소설을 길동무처럼 따라 읽으면서 공선옥 소설의 존재의의를 설득력있게 부각시킨 글이다. 그럼으로써 이 글은 독자에게는 개안을, 작가에게는 위안을, 그리고 글쓴 이 자신에게는 텍스트와 더불어 살아보는 경험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텍스트에 충실한 것이 얼마나 큰 미덕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글이다. 강경석씨의 타원형 감옥의 외부는 백민석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와 미학적 경험 사이의 상관관계를 폭넓게 조망한 글이다. 생의 적출물의 의미, 폭력적 충동의 존재 형식, 고딕의 정치적 무의식, 가족 이념의 내파, 세계의 남성적 지배와 타원형 감옥 구조, 디지털 화소조합으로서의 삶의 경험 등등 현대성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망라하는 한편 문학의 글쓰기가 그 주제들과 동일체를 이루면서 또한 해체변형을 행하는 가운데 도출되는 미학적 경험의 굴곡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원동씨와 강경석씨의 평론에 대해 가장 긴 토론이 오고 갔다. 이원동씨의 글은 텍스트 안에 갇혀 있다는 약점이 있었고 강경석씨의 글은 지나치게 북적대는 현대성의 주제들이 논리적 맥락을 종종 놓치면서 작품 해석을 자의적으로 끌고 가는 약점이 있었다. 다만 강씨의 글이 규모가 크면서도 세목들을 놓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그가 흘린 땀이 상대방을 훨씬 압도한다는 점에서 마지막으로 선택되었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바란다. (김인환, 정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