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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추천사 등

2012년 이한열 문학상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2. 12. 5. 08:30

시 부문에서는 김준호, 김현지, 심민관, 조원희, 조윤강의 작품들이 자신의 심정을 솔직히 토로하고 있었다. 다만 시는 마음의 드러냄이되,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드러내는, 의식적 실천임을 유념해주기 바란다. 그 의식적 실천의 효과는 단순히 의지나 다짐만으로는 달성되지 않으며 사물과 환경 속으로 그 마음을 끌고 들어가 또렷한 실감 혹은 객관적 상관물을 획득할 때 가능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최종 검토 대상이 된 작품들인 박연빈의 무릎 관절 사이, 전아영의 오필리아, 조윤아의 플라스틱 우주는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작품들이다. 박연빈의 시는 젊은 여성의 육체적 충동과 불안을 정직하게 감당해내고자 하는 의지가 그 자체로서 일종의 거울로서 기능해 그 충동과 불안을 삶에 대한 모험으로 바꾸고 있었다. 다만 그 모험의 형상들이 충분히 명료하지는 않다는 게 아쉬웠다. 전아영의 시는 운명의 냉혹함 앞에 희생되고야 마는 약한 인간의 비극을 햄릿의 인물에 투영한 작품으로, 그 운명의 비극을 코끼리와 수련의 기묘한 대비를 통해 표출함으로써 매우 참신한 이미지를 빚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다만 감상적인 태도가 이미지를 뒷받침해 줄 사유의 부족을 드러내고 있는 게 흠이었다. 조윤아의 시는 세계를 의식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화자가 겪는 그 이해의 드라마를 다채롭게 펼쳐 보인 장시로서, 세계와 만나는 자의 근본적인 외로움, 그가 참조할 동류 인물들에 대한 사유, 이해로서의 세계와 경험으로서의 세계의 차이가 야기하는 사건들, 그가 발견할 세계가 그가 발명할 인공물이리라는 자각 등이 매우 주밀한 의식의 흐름을 타고 있었다. 인물들, 행동들, 장면들 사이의 연결이 썩 매끄럽지는 않다는 한계가 있었으나, 시의 분량 또한 노력의 강도를 증거하고 있었으니, 당선작으로 뽑는 데 주저할 일이 없었다.

소설 부문의 투고작들에 대한 독후감은 다음과 같다. 염우성의 중간고사는 시험과 어머니의 수술이 동시에 닥친 상황에 처한 대학생의 심리적 일상을 꼼꼼히 기록한 소설이다. 정밀한 기록 자체는 소설쓰기의 기본에 해당할 것이나, 이 일상의 흘러감에 대해 삶의 의미를 캐묻는 의식의 더듬이가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채로 있었다. 더욱 정진을 바란다. 이 소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투고작들이, 젊은 사람들의 글이 흔히 그러하듯, 정서적으로 과잉되어 있었다. 그 감정이 그대로 노출될 때, 소설은 사태와 드라마를 과장하게 되고 묘사는 난폭해진다. 한데 그 감정들을 특이하게 변형시키는 젊은 세대의 특별한 취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건 예기치 않은 수확이었다. 즉 몇몇 소설들은 격한 충동을 엉뚱한 사물들로 변용시킴으로써 기이한 판타지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판타지 열풍이 불어닥친 지 20년 가까이 되어가는 지금에 와서 비로소 환영의 세계가 일상적 의식과 만나 섞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허윤의 크리스마스에는 산타를 기다리고와 최영건의 현기증은 특기할 만하였다. 허윤의 소설은 미국으로 이민 간 가족의 아들이 동양인의 신체적 특성과 식습관 때문에 미국인 학생들에게 놀림을 받는 상황을 과장되게 그려낸 작품인데, 문제의 상황에 매우 구체적인 사물들과 육체들을 때마다 적용함으로써 이 조롱의 사태를 온갖 사물들이 뒤범벅이 된 난장판의 광경으로 형상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주인공과 짝패의 대비가 선명치 않고 최종적 파국을 위해 기능하는 두 인물의 행동이 납득할 만하지 않았다. 반면 최영건의 소설은 육체적 충동의 윤리성에 대한 젊은이다운 고민을 허구적으로 풀이해 본 작품인데, 그 고민의 세부 양상들을 아주 기발한 동식물들로 치환하고 또한 그 동식물들에게 엉뚱한 행동들을 연출케 하여 돌출시킨 매우 그로테스크한 광경들을 화자의 면전에 쏟아 붓고 있었다. 그래서 설핏 봐서는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요령부득의 만화경의 공회전 안에 갇힌 듯한 느낌을 주는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끊임없이 돌고 도는 게 매우 절박한 젊음의 고뇌 자체임으로 깨닫게 한다. 현기증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평론 부문에 대해서는, 우선 평론이라는 장르의 존재론적 의미에서 대해 말하고자 한다. 평론은 독후감도 논문도 아니다. 평론은 문학 텍스트에 대한 독서가 실존적 경험을 이룰 뿐만 아니라, 그 경험이 또한 창조적 주관의 모험의 수준에 오를 때 성립한다. 요컨대 평론은 또 하나의 문학이다. 따라서 평론은 무엇보다도 의 이야기이어야 하며, 그만큼 산만하지 않고 일관되어야 하고 지금 일어나는 사건처럼 생생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유를 정확히 의식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문장에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세 편이 투고되었는데, 정지민의 가면에 진실이 있다가 그런 조건에 가장 가까웠다. 그의 글에는 롤리타에 대한 자신 만의 관점과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다만 초점이 좁아 생각의 양이 부족한 게 흠이었다. 가작으로 뽑는다.

이 심사평이 당선자들에게는 축전일 것이며, 아쉽게 탈락한 학생들에게는 격려로서 읽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