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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추천사 등

2000년 '디지털 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2. 12. 10. 18:02

디지털 시의 초입에 세 가지 문제가 놓여 있다. 첫째, 화면에서 시를 읽는 것과 종이책으로 시를 읽는 것이 다를 수 있는가? 둘째, 디지털 공간이 국경이 붕괴된 공간이라면 디지털 시는 문자(민족어)의 경계를 뛰어넘어야 할 것이다: , 번역 가능성의 문제이다. 셋째, 네트워크상의 시는 완성된 것이라기보다 열려 있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시의 형태, 아니 차라리 문학에 대한 개념의 근본적인 변화를 생각게 하는 것이다.

이 세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기에는 아직 때가 도착하지 않았다. 디지털 문학상이라는 오늘의 공모는 디지털-문학을 겨우 수태한 시점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상의 초점은 첫 번째 문제에 놓여 있고, 그 대답도 다르지 않다라는 쪽에 던져져 있다. 이 상은 무엇보다도 e-book을 전제로 한 상이고, e-book또 하나의 책인 것이다. 그러나 너무 아쉬워하지는 말자. 모든 변혁은 모방에서 시작한다. ‘유사성을 간절히 찾는 동작들이 차이를 생산하는 맹렬한 기운으로 바뀌어 나가서 마침내 전복이라는 왕성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 그것이 변혁이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모음)들이 두루 전통적인 시 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선자들의 기준도 당연히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김연규의 실종극화(劇化)’가 돋보였으나 대개는 익히 보아 온 수사적 표현들을 시와 혼동하는 험이 있었다. 김영식의 내일은은 난폭한 상상력이 흥미로웠으나 인식의 깊이를 획득하지 못했다. 김종현의 시를 사랑한 사람이야기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의 진지함이 강점이자 약점이었다. 그 진지함이 종종 과장으로 함몰했기 때문이다. 박귀봉의 간척지에서는 깨끗한 이미지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그 이미지들 밑에 숨어 있는 것은 역시 과장된 정서였다. 췌언이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박옥실의 서면 가는 길은 전통적인 서정시의 어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시인데, 그만의 목소리를 찾기 어려웠다. 송기영의 오래된 책상은 마음의 무늬를 바깥의 사물들(인간의 몸까지 포함하여)에 투영하고는 그 사물들에 이리저리 조작을 가한다. 사물들을 정도껏 괴롭혀야 사물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할수 있을 것이다. 유재형의 사막의 주유소에선 비상투적인 관찰과 묘사를 위해 애를 쓴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지들이 리듬을 타고 있지 못했다. 어떤 이미지들은 간극이 절벽 같고 어떤 이미지들은 쓸데없는 반복이었다. 이경진의 탱자나무 울타리는 전통적인 서정시의 어법을 따르면서 그것에서 벗어나보려고 한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작위적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홍종화의 무말랭이의 노래가 보여준 다소간 엽기적인이미지는 옅은 감상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아니라 그것을 과잉시키는 충동이었다.

최종적으로 전정순의 라면 먹는 법과 유종인의 껍질의 길이 남았다. 전정순의 시에는 사유의 날카로움이 있었다. 그 날카로움을 가능케 한 것은 삶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세상을 살 수 밖에 없는 자의 비애를 동시에 투사하는 이미지들을 잉태한 글쓰기의 노동이다. “우그러진 뜨거운 울음/라면 밑에 깔린 죽음의 푸가라든가 노래로 풀씨를 잠재우고 노래로 초록을 일으킨다같은 구절은 쉽게 씌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나치게 가벼워지려고 작정한 듯한 대목들, 가령, “흘러간 유행가는 버스 안에 출렁이고/심심한 나는 짝짝 소리내어 껌을 씹는다라든가(이 구절에서 짝짝 소리내어는 자극이 지나치다. ‘짝짝을 빼거나 소리내어를 뺐으면 좋았을 것이다), “요동치는 흙탕물을 건너 관광버스가 도착하고/빨간 모자를 쓴 한 떼의 사람들이 물감처럼 쏟아진다”(‘흙탕물/물감의 대립은 재치 있고도 도식적이다) 같은 구절들을 약점으로 판단해야 할까 아니면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야 할까를 망설이게 하였다. 유종인의 껍질의 길은 아주 오랜 수련을 짐작케 하는 수사로 넘치는 시집이다. 그의 불길은 마른 칸나 대궁으로 만든불길이고, 잠이 덜 깬 상태로 일어난 새벽은 잔불같은 새벽이다. “부처를 간통한 금개구리의 눈알이 타버린 알전구처럼/크리스마스 이브의 가짜 트리에서 꺼졌다 불 밝혔다...” 같은 구절에선 아예 수사가 수사를 부른다. 한데, 수사가 넘쳐나다 보니 리듬이 부족하다. 단조로움의 극복은 그의 숙제가 될 것이다.

어쨌든 한 사람을 뽑아야 했다. 나는 유종인의 작품을 최종당선작으로 하자는 주장에 반대하지 않았다. 당선자에게는 당연히 축하를, 낙선자에게는 더 큰 격려를 보내는 게 도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