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2002년 '현대시 신인상' 추천사 본문

심사평, 추천사 등

2002년 '현대시 신인상' 추천사

비평쟁이 괴리 2022. 12. 10. 17:56

송반달씨의 시에는 인생의 고달픔을 이겨내는 신명이 있다. 그 신명이 솟아나는 자리들이, 즉 신명의 샘들이 특이하다. 그는 고난 따로 용기 따로로 보지 않는다. 아니, 살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혹은 살기에, 힘겨운 자리가 곧 신나는 자리이다. 그 동시성의 자리는 그러나 막무가내로 그렇다고 강변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인식은 꽤 복잡한 논리적(좀더 정확하게 말해 논리-실행적) 과정을 담고 있다. 가령, “허리 아프게 거친 파도의 검은 잔등에서 내렸다, 싶었는데/더 조급해진 바람이었다바람은 아득한 여정을 재촉하는 채찍같은 바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문득 붕뜬 허공에서 휘청휘청 춤까지 추는수양버들을 보고, 그 수양버들을 춤추게 한 것이 바람임을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수양버들이 처음 길을 떠날 때 서 있었던 것을, 아니, 휘청휘청 춤추고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것이 수양버들이 돌아왔다. 옛 생각으로/ 물구나무선 시계추가 통뼈 된 회귀의 나무로 내려섰다에 교묘히, 즉 딴청하는 체 표내는 방식으로, 암시되어 있다. 저 버들의 그네인 바람을 보고, 그렇게 바람에 휘청댄 버들에 대한 최초의 기억으로 되돌아가자, 바람은 어느새 나를 후려치는 바람이 아니라 내 안에서 샘솟았던 출분의 바람, 즉 바람나서 길을 떠났던 들뜬 마음이 된다. 모진 바람은 바람난 마음이다.

그러니까 송반달씨의 시적 화자들은 이미 고행의 초입부터 신나게 놀고 있는 것이다. 그 고행과 신명 사이에는 동시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아니, 그 동시성에 힘입은, 비상한 탄력이 있다. 고행이 심할수록 신명도 세지는 것이다. 하늘에서 소낙비가 내려 흙이 후두둑 패이는 광경을 두고, “땅 쪼아 하늘에다 뱉고 하늘 쪼아 땅에다 뱉는다”(우후죽순을 꿈꾸며)는 구절은 맞춤한 보기이다. 그 탄력이 각종의 기묘한 마술을 부린다. “흙탕물을 트집 잡힌 땅바닥이 함석지붕 치마폭 속으로 뛰어들더니 투둑투둑 엄살이다같은 시구가 가진 골계미는 그런 마술의 결과이다. 게다가 송반달씨의 이런 시적 기량은 한국 시에서 보기 드문 경우에 속한다. 한국시는 대체로 엄숙하고, 혹은 엄숙하지 않을 때에도, 대체로 잠언적인데, 송반달씨의 시는 엄숙하지 않게 유쾌상쾌흔쾌’(어느 광고를 통째로 베낀 맹한 장난임을 다들 아시리라)하며, 그것의 활달함은 잠언으로서 표명되는 것이 아니라, 말로써 실감실천된다. 그의 가능성을 믿고 지켜봐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