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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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의 글/소설읽기

홋타 요시에의 『고야』

비평쟁이 괴리 2011. 8. 14. 10:15

3세계인만이 할 수 있는 유럽 현대사에 대한 증언

 홋타 요시에, 고야, 4, 김석희 역, 한길사, 2010, 각권 25,000

 이 책은 스페인의 화가 고야(1746-1828)의 전기가 아니다. 이 책은 고야의 일생을 동선으로 따라가며 스페인의 정치적 격변과 그에 대한 예술가의 성찰과 느낌 그리고 반응의 의미를 다룬 책이다. 왜 고야인가? “시대의 증언자로서의 예술가라는 존재방식이 전적으로 성립되어 있기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는 고야를 통해 현대사의 발단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시대의 증언자는 단순히 묘사자가 아니다. 그는 전쟁의 비참함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비참한 현실이 그 자신으로 하여금 무엇을 느끼게 하고 무엇을 생각하게 했는지, 에스파냐인으로서, 애국자로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했는지를 동판에 새긴사람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책을 쓴 작가 홋타 요시에, 그 자신에게로 질문을 돌릴 수 있다. 그는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려 했을까? 그는 유럽문학을 전공한 지식 청년으로서 상하이에서 일본의 패망을 만났으며, 천황제로 대표되는 일본식 국가주의에 환멸을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일본 군국주의의 원천에 국가 단위의 현대’”를 창출한 고야 시대의 유럽이 있음을 깨닫는다. 작가는 자신에게 지적 세례를 주고 자기 나라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한 먼 나라의 정신이 바로 자기 나라의 뿌리일 수도 있다는 미묘한 아이러니에 접하였던 것이고, 그 과정을 객관적으로 추적하고 또한 성찰하려 했던 것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제 3세계인만이 할 수 있는 유럽론’(번역자의 표현을 빌리자면)의 모범적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은 1974년에서 77년 사이에 일본에서 출간되었다. 한국에는 1998년 처음 번역되었고, 이번에 개정판이 나왔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무척 낡은 책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우리는 세계의 격변에 대해 그의 지척에서 세계와 같은 규모로 성찰하는 작품을 거의 만들지 못했다. 최인훈과 이청준의 몇몇 소설들, 그리고 지금은 독자의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으나 홍성원의 어떤 작품들이 그러했을 뿐이다. 게다가 우리는 그런 성찰을 한국 바깥을 대상으로 시도한 작품을 한 권도 갖고 있지 못하다. 이 책이 35년 전에 보여준 세계는 한국 작가들의 전인미답의 세계다. 이 낡은 책은 아직도 한국에 도래하지 않았다. 이 책을 소개하는 소이다.(쓴 날: 2010.11.22.; 발표: 간행물윤리위원회 좋은 책 선정위원회 선정 이 달의 좋은 책, 20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