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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의 『지금이 아니면 언제』 본문

울림의 글/소설읽기

프리모 레비의 『지금이 아니면 언제』

비평쟁이 괴리 2011. 8. 14. 10:05

행동의 불가피성과 선택의 어려움에 대한 섬세한 살핌

 

프리모 레비, 지금이 아니면 언제(김종돈 옮김, 노마드북스, 2010(원본출간:1982))

 

사람이라면 누구나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과 마주치게 된다. 그 상황의 규모가 크든 작든 말이다. 두 갈래 길 앞에서 망설이는 개인의 선택으로부터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에 참여하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무엇이든 그 결단의 몫은 언제나 하나의 개인으로서의 그 자신에게로 귀속된다. 그리고 그 사실에 의해, 모든 결단에는, 그 개인의 전 존재 혹은 양심이 걸리게 된다. 그것은 결국 내가 세계에 대해 하나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며 동시에 세계의 변화에 한 줌의 에너지를 보태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내가 세계 내에 속한 존재인 한, 세계의 변화를 통해 밀어닥칠 나의 삶과 존재의 변화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리모 레비의 장편 지금이 아니면 언제의 제목은 바로 그 결단이라는 상황의 엄혹성을 가리킨다. 어느 순간엔 누구든 자신과 세계를 위하여 어떤 태도 또는 행동을 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주 막중한 일이라면 누구나 회피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회피 자체가 하나의 선택이 되는 것이다. 그건 행동을 취했을 경우에 가능한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낳는 데 자신의 힘을 보태는 행위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은 필수적인 결단의 순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행동의 때는 결코 다시 오지 않는 것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프리모 레비는 뛰어난 화학자로서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나치 독일에 의해 아우슈비츠절멸수용소(작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에 갇혔다가 가까스로 살아난 사람이었다. 생환 이후, 그는 극한상황에 처한 인간이 행하는 온갖 비열함과 또한 그 상황과 맞서 싸우는 데서 우러나는 사람의 의연함과 기품을, 그리고 그것들의 복잡한 얽힘을 거듭 성찰해 왔다. 그러한 그의 노력은 자신에 대한 존재증명이자, 아우슈비츠와 같은 끔찍한 상황을 만들어놓고도 여전히 세계를 꾸려가고 있는 인간이 사는 까닭과 살기 위해서 사는 방식을 캐묻는 일이었다. 1982년 상자한 소설 지금이 아니면 언제역시 그러한 그의 성찰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그 점을 염두에 둘 때, 제목이 가리키는 의미는 분명하다. 어떤 상황이든 거기에는 인간이 행한 책임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상황이 절멸 쪽으로 가지 않으려면, 그에 대해 신중하고도 철저하게,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운산하고 답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멘델레오니드라는 두 인물이 겪게 되는 모험 하나하나에 부여되는 질문이 그것이다. 이때 멘델이 아내를 독일군에 의해 잃었고 레오니드의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참여한 혁명으로부터 스탈린에 의해 배반당하고 헛되이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은 바로 저 책임의 문제를 강조하는 쪽으로 기능한다. 그러한 사연이 과도한 감정적인 반응을 야기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행동이 야기할 결과를 유념해야 한다는 것. 충동적인 레오니드가 차츰 망가져 가고 결국 무모한 돌격 끝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그러한 작가의 문제의식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작가가 정작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 인간은 실제로는 레오니드처럼 살 수밖에 없는 슬픈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의 결단과 행동이 순수한 자유의지와 정밀한 논리적 계산을 통해서 명백한 형태로 끌어내지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안됐지만 인간의 사안 중에서 그렇게 명확하게 예측가능한 일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상황 속에는 나만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자신의 행동에 간섭하는 무수한 요인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간섭 하나하나가 시시각각의 변화를 낳기 때문에, 모든 전망에 뿌연 먼지를 퍼트리는 것이다. ‘레오니드에게 붙인 시계 속의 먼지라는 비유는 그러니까 인간 일반에 대한 비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의 행동이 낳을 결과를 냉혹히 운산하더라도, 그 운산으로 얻은 결론을 확신으로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무모한 레오니드가 죽었을 때, 그를 죽인 것은 독일군이 아니라 자신과 라인이라는 생각멘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바로 그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결단의 불가피성과 그 결정의 근본적인 모호성 사이의 모순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실제적인 정황들의 복잡한 양상은 그것을 읽는 독자에게 인간 삶에 대한 이해의 지난함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하지만 이 소설의 진정한 가치는 그 확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생체험으로써 느끼게 해준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러한 체험의 전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가장 섬세한 신경다발을 스치면서 조심스럽게 비껴가는 작가의 문체이다. 어느 단어, 어느 문장 하나 조심스럽게 선택되지 않은 게 없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 사람을 배려하지 않은 게 없다. 그것이 독자를 재현되는 상황의 현장 속으로 깊숙이 끌어당기면서 동시에 그윽한 눈길로 마치 손으로 쓰다듬듯이 그 현장을 살피게 한다. 행동과 관조가 독자의 눈 속에서 한 몸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것을 느끼는 과정은 인간의 저 깊은 심연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쓴 날: 2010.10.26.; 발표: &201011월호의 청소년을 위한 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