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한국문학 번역상을 마감하며 본문

심사평, 추천사 등

한국문학 번역상을 마감하며

비평쟁이 괴리 2022. 12. 16. 21:54

※ 아래 글은 '한국문학 번역원'이 주관하는 '한국문학 번역상' 운영위원회에 참여한 일에 대한 마감 소감으로 씌어진 글이다. '한국문학 번역원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https://blog.naver.com/itlk/222948486276). 

 

[정책에세이 #9] 번역의 깊은 뜻이 한국문학에 새겨지길 바라며

한국문학번역원 뉴스레터: 2022 한국문학번역상 시행 의의 번역의 깊은 뜻이 한국문학에 새겨지길 바라며 ...

blog.naver.com

 

번역의 깊은 뜻이 한국문학에 새겨지길 바라며

2022년도 한국문학 번역상 일체의 과정과 행사가 무난히 치르어졌다. 한국문학 번역원장을 비롯 번역출판교류본부가 공들여 준비하고 심사위원단(김능우, 김양순, 박종소, 그리고 필자)이 심사를 성실히 수행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한국문학번역상을 제정한 취지는 명백하다. 무엇보다도 한국문학의 기반시설인 한국어가 세계어권 내에서 고립어이기 때문이다. 한국어는 오늘날 세계어로 기능하고 있는 영어는 물론, 준 세계어라 할 수 있는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등과도 호환성이 희미하다. 이웃나라인 일본어와 중국어 역시 한국어와 뿌리가 다르다. 애초에 고립성은 한국문학의 생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 8.15해방과 더불어 일본어가 한반도에서 물러난 이후, 한글은 한국인의 생활문자로서 아주 빠른 시간 내에 정착하였다. 그리고 생활 문자는 곧바로 사유어이자 표현어로서의 기능도 겸임하게 된다. 그렇게 세 박자가 갖추어진 상태에서 한국어는 한국문학을 위한 역동적 질료로서 제공되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문학이 포플러나무처럼 쑥쑥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한글의 문해성과 기능성의 특별한 크기 덕택이었다.

그런데 세계화의 흐름은 자국문학을 세계문학의 자장 안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한글의 고립성 때문에 한국문학은 세계문학으로 변신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생장의 동력이었던 것이 이제 방해물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문학의 질료적 폐쇄성이라는 장벽을 넘기 위하여 도입된 제3의 장치가 번역이다.

한국문학과 세계독자 사이의 소통을 위해서 번역의 역할은 막중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번역이 하는 일은 단순히 소통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문학이 그냥 주제의 발화가 아니라, 체험과 감수성의 공유를 통한 공감에 의해서 전달되기 때문이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 오랜 역사적 경험이 한국어의 곳곳에 녹아 들어가, 언어 자체가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번역은 그 세계의 형상을 감각적으로 전달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번역은 직역이나 의역이 아니라, 출발국(한국)의 언어와 문학이 가진 고유성을 적절히 보존함으로써 도착국 독자들에 의해서, 베르만의 표현을 빌면, “낯선 것과의 조우를 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로써 두 개의 언어가 문학 작품이라는 한 자리에 만나 더 큰 세계의 창출을 위한 교류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한국문학 번역상은 한국어와 세계독자들 사이의 상호교류를 높이는 데 기여한 분 중 최근의 업적이 뛰어난 분에게는 번역대상, 앞으로 기여할 가능성이 높은 분에게는 번역신인상, 그 동안 그 일에 시간과 공력을 바쳐 온 공적들의 축적이 많은 분에게는 공로상을 드린다.

번역대상의 경우는 수상 수가 한정되어 있는 반면에, 도착국 언어가 수다하다는 문제로, 세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각 그룹 당 1분씩을 선정하기로 하였으며, 상의 이름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으로 동일하며, 상금액수도 공히 같다.

번역신인상의 경우는 지정 작품 공모에 응한 각 언어권별로 1~2인을 선발하는 방법을 택했으며, 심사 결과 9개 언어권에서 1분씩을 드리기로 결정하였다.

공로상의 경우, 번역의 성과 뿐만 아니라,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대한 공적도 함께 포함하여, 그 업적이 정도가 가장 적절한 분에게 수상하는 원칙을 적용하였다.

향후 수십년 간 번역이 맡은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해 질 것이다. 이 과정은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보통시민으로 자리잡는 과정이 될 것이며, 또한 그러한 시민권등록을 통해서 세계문학의 진화에 기여하는 일로 이어질 것이다. 언젠가 뚜렷한 결실이 나올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