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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남의 『풍경의 깊이, 사람의 깊이』 본문

울림의 글/산문읽기

최일남의 『풍경의 깊이, 사람의 깊이』

비평쟁이 괴리 2011. 8. 14. 10:39

생활어로서의 한국어의 성찬

 

최일남 에세이, 풍경의 깊이, 사람의 깊이, 송영방 그림, 문학의문학, 2011, 296, 13,000)

 

한국에 수많은 글쟁이가 있지만, 한국어의 풍부한 어휘 자원을 자유롭게 골라가며 생각과 마음의 결과 꼴을 섬세하게 빚고 잣고 다듬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최일남 선생은 그 드문 이들 중의 한 분이다. 또한 한국어를 잘 다루는 이들이래도 한결같지 않고 취향이 각색이다. 어떤 분은 이쁘고 새초롬한 말들만 골라서 써서, 마치 화장대 위에 가지런히 놓인 장식품들을 보는 듯할 때가 있다. 최일남 선생의 어휘들은 모두 시정의 생활어에서 나온다. 그래서 해토머리’, ‘얼금뱅이’, ‘아주까리’, ‘내남직없이같은 말들도 귀한 한국어지만, ‘위의(威儀)’, ‘종용(從容)’, ‘동몽(童蒙)’, ‘포의(布衣)’, ‘공민(교과서)’ 같은 거의 쓰이지 않는 한자어들도 실감을 낼뿐더러, ‘바탕화면’, ‘허걱’, ‘외짝 엄마같은 21세기 신출 한국어들도 경쾌히 뛰어다닌다. 심지어, ‘아카징키’, ‘포즈같은 외래어들도 선생의 책에서는 오래 묵은 한국어처럼 읽힌다.

말의 성찬을 입으로 즐기며 독자가 눈으로 발견하는 것은 한국인과 한국의 풍경, 그리고 한국의 삶 속에서 태어나고 사라졌던 온갖 물상들이 생생히 되살아나는 모습이다. 그래서 저자가 김소운 선생의 글을 두고 규정했듯이, 이 책 역시, “사람의 체취로 물씬거린다.” 여기에는 한국인의 현대사가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다. 그 역사는 한국인이 쇄도해오는 근대의 문물을 체화하려 애쓰면서도 기꺼이 한국인의 이름으로 그 일을 해내고자 몸부림하는 과정 속에 일어난 온갖 단련과 저항과 도전들의 집합이다. 그 노력은 생활로도, 행동으로도, 표현으로도 나타났다. 그렇다는 것은 산다는 것이 그 자체로서 세계에 대한 해석이자 동시에 기획이라는 것을, 다시 말해 삶이 곧 성찰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에 와서야, 독자는 제목에 붙은 깊이라는 말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물론 독자가 도처에 산포하는 저자의 해석과 판단에 무조건 동의할 까닭은 없다. 깊은 성찰은 성찰을 요구한다. 성찰은 토론을 통해서만 열린다. 그것이 공감의 진정한 뜻이고 책의 존재 이유다.(쓴 날: 2011.1.24.; 발표: 간행물윤리위원회 좋은 책 선정위원회 선정 이 달의 좋은 책, 2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