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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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의 글/산문읽기

이윤기의 유고집

비평쟁이 괴리 2011. 8. 14. 10:42

이윤기 선생을 추모하며


이윤기 산문집, 위대한 침묵(179)/ 소설집, 유리 그림자(152), 민음사, 2011, 각권 10,000


이윤기 선생이 영면하신 건 작년
8월이었다. 그날 우리는 뛰어난 번역가이자 소설가이며 문장가였던 분을 잃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이의 남은 문향을, 유고 산문집/소설집을 통해서 맡는다. 맡는다? 그렇다. 선생은 무엇보다도 후각적인 존재였다. 보들레르가 상응에서 장려하게 보여주었듯이, ‘후각은 장애물들 사이를 뚫고 가장 멀리 퍼져 나가는 감각이다. 이윤기의 고유한 문체는,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그이의 문장 한 줄만으로도 독자의 머리 속에 꽤 특별한 글 세상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였다. 게다가 후각은 또한 깊이 스며드는 감각이다. 그래서 거기서는 정신과 감각의 혼융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윤기의 글은 느낌이 곧 지성이고, 지성이 곧 느낌인 글이었다.

그래서 그이는 없어도 있었고, 조금 있어도 많이 있었다. 이 멀리 그리고 깊이 가는 글의 감각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나는 그 원천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이가 수용해 두뇌피질 속에 축적한 세상의 모든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그이는 모르는 게 없었다. 인류의 신화뿐만 아니라 시시콜콜한 인생잡사의 온갖 비밀을 그이는 알았다. 어떤 유행가요의 노랫말의 기원도 알고, 그 변질도 알았고, 흔히 쓰는 외국어의 어원과 운용도 알았다. 선생은 그래서 일종의 보편적 지식에 가까웠는데, 그이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결코 되새길 수 없는 그런 지식들로 가득했다. 그러니 그이의 글은 언제나 앎을 일깨우는 모종의 향료였다. 나는 유고집을 읽으며 선생의 혼령이 그렇게 은밀한 향료가 되어 둘레의 공기 속을 떠도는 걸 느낀다. 그 덕분에 나는 세상을 더욱 배우는 것이다. 더욱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이의 사후는 그런 삶이리라. 그것이 그이를 안식케 하리라. (쓴 날: 2011.2.21.; 발표: 간행물윤리위원회 좋은 책 선정위원회 선정 이 달의 좋은 책, 2011년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