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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인의 철학으로서의 고집스런 휴머니즘-올리비에 토드의 『카뮈:부조리와 반항의 정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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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인의 철학으로서의 고집스런 휴머니즘-올리비에 토드의 『카뮈:부조리와 반항의 정신』

비평쟁이 괴리 2023. 11. 19. 20:38

20세기 중반기를 풍미한 프랑스의 사상가․문학인들 중에 카뮈Albert Camus만큼 한국 독자의 폭넓은 사랑을 받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셍-텍쥐페리Saint-Exupéry는 청소년을 위한 작가였고, 보브와르Simone de Beauvoir는 여성들의 작가였다. 말로André Malrlaux는 명성보다 훨씬 적게 읽혔다.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으나 그 영향은 지식 사회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었다. 카뮈만이 유일하게 계층과 직업과 성별이 편중되지 않은 애독자를 가진 작가이다.
왜 그러할까? 태양의 눈부심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Meursaut(『이방인L'étranter』)의 돌출한 행동 때문에? 아니면 역병이 만연한 도시에서 순교자적 열정으로 사람들을 구한 의사 류Doctor Bernard Rieux(『페스트Peste』)의 도덕적 위엄 때문에? 아닌 듯하다. 인간 존재의 근거 없음, 소위 부조리의 철학자는 카뮈말고도 많았다. 그 삶의 부조리를 반항으로서 뚫고 나가려 한 행동인으로 우리는 류보다 『인간 조건La condition humaine』(말로)의 첸Tchen을 더 강렬히 떠올릴 수 있다.
카뮈를 카뮈답게 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그가 유정한 작가였다는 점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태어난 고장에 대한 사려 깊은 사랑, 그와 연대했거나 그와 싸운 사람들에 대해 그가 보인 신중한 경의들 그리고 자신의 친구를 죽게 만든 나치의 협력자들마저도 구명하려 한 그의, “따뜻한 인간애”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관용의 정신, 이런 것들은 카뮈를 합리주의로 무장한 서양의 지식인이라기보다는 다정하고 의리 있는 이웃 아저씨로 느끼게 한다. 그런 연상이 그저 한국 독자만의 그것은 아닐 것이다. 쥘리앙 그린Julien Green은 “아주 다정다감하면서도 인간적인 그의 얼굴”에 감동을 받았거니와,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다정다감한 정직성”에 반하고 말았다. 사르트르가 지식인들의 얄미운 스승이라면 카뮈는 문학과 삶을 사랑하는 만인의 친구였던 것이다.
올리비에 토드Olivier Todd가 쓰고 김진식이 옮긴 『카뮈:부조리와 반항의 정신』(책세상, 2000; 원제: Albert Camus, Gallimard, 1996)은 이 유정한 작가의 한 평생을 꼼꼼히 복각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카뮈에 대한 우리의 인상이 단지 “너무나 인간적인” 편견에 의해서가 아니라, 카뮈 자신의 삶의 궤적을 통해서 말 그대로 ‘실존적으로’ 형성된 것임을 잘 보여준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두 가지 방법론을 도입하는데, 하나는 환경의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영향의 복합성이다. 환경이란 카뮈가 알제리의 가난한 프랑스 인이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는 알제리 인들과 달랐지만 동시에 권력을 쥐고 있는 프랑스 인들과도 달랐다. 그는 피식민자와 식민자 사이에 끼인 이중적 존재로서, 이 둘에 대해 애정과 갈등을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고 있었다. 이 공평한 위치가 인류에 대한 그의 보편적 사랑의 씨앗이 된다. 영향의 복합성이란 그가 타인들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영향을 자신과의 내적 대화로 바꿀 수 있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의 부지런한 서신 교환은 그 영향의 바깥쪽 면을, 그의 ‘수첩’은 그것의 안쪽 면을 입증하는 물증들인데,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아니라, 바깥의 영향을 내면의 대화로 바꿈으로써 그가 세워나간 삶의 지침이다. 그 지침은 “두터운 우정은 생의 철학에 기초해 있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p.182)다는 그의 말에 암시되어 있듯이, 이웃에 대한 사랑을 생의 철학으로 수렴시키는 것, 그리하여, 끊임없이 생활에 ‘모랄’을 세우려는 노력을 뜻한다. 모랄은 엄격한 윤리 원칙이 아니다. 그것은 풍속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풍속을 건강하게 이끌고 가는 생의 원리이다. 카뮈가 “정치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 세우려 한”(p.633) 그 모랄, “순수하고 엄격하고 심지어는 관능적이기까지 한 그의 고집스런 휴머니즘”(p.1267)은 바로 잡스런 일상의 한복판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난 철학, 카뮈가 세운 철학이라기보다 차라리 일상인들이 카뮈라는 인물로서 세운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카뮈가 다시 중요하게 부각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 2000. 6. 24,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