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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서의 「나의 오식」 본문

울림의 글/시 한 편 읽기

조영서의 「나의 오식」

비평쟁이 괴리 2011. 8. 13. 22:46

나의 誤植

 

바람이 기어 온다 성큼성큼, 바람 틈에 태어난 나는 하늘땅이 비틀거리는 오식이다 햇살 한줄기 뿌리 깊이 박힌 誤字, 오자는 눈이 부시게 시리다 황홀하다 오식 사이사이 심심찮게 드나드는 바람은 사투리다

나는

오늘

지우개가

닳고

없다

(조영서 시집, , 하늘에 날개를 달아주다, 문학수첩, 2001)

 

조영서 선생이 27년 만에 시집을 상재하였다. 시들과 함께 뒹군 시인의 땀내가 진하다. 그 땀내를 맡아 보니, 시인은 느릿느릿 그러나 시 한편마다에 온 몸을 던지며 살아 왔다. 그것을 두고 성큼성큼” “기어왔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가 성큼성큼 기어 온 세월은 시쓰기를 충동하는 바람을 계속 맞으며 살아 온 세월이다. 그런데 그는 오직 오식만을 심으며 살아 왔다. 하나의 완전한 시, 정식으로서의 시는 오직 결여로서만 존재한다. 이것을 두고 한 유대인 철학자는 절대의 형이상학이라 불렀다. 참된 절대는 결여로서만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지상적 삶의 어떤 것도 미완의 것으로 만든다. 그럼으로써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쳐준다. 아무리 뛰어난 일일지라도 부족하고 미흡할 뿐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더 나아가 그것은 인간의 모든 행위에 결코 고갈되지 않는 활달한 운동을 부여한다. 이미 완성된 시가 있다면 더 이상 시쓰기가 계속되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오식은 가짜 정식을 뛰어넘으려는 의지의 능동적 전개이다. 모든 굳어진 형식과 틀을 깨뜨리려는 의지 말이다. 오식은 그래서 눈이 부시게 시리다 황홀하다.” 그러면서 스스로 부족하고 미흡함을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교정된다. “지우개가 닳고 없게 되는 것이다. 그걸 읽으며 나는 너무 쉽게 씌어진 내 글이 부끄럽다. (쓴날:2002.01.21, 발표: 주간조선1690, 200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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