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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하는 떠돌이의 시 - 최문자의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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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하는 떠돌이의 시 - 최문자의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

비평쟁이 괴리 2022. 9. 20. 17:49

※ 아래 글은 2022년 이형기 문학상 심사평이다.

최문자 시인의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를 관류하는 기저 감정은 부끄러움이다. 그런데 표면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시인의 원래 지향인 발견과 탐험을 향한 솔직담백한 충동이 활짝 피어서 그것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자유로운 유랑을 떠나는 매 순간 자신의 존재 양태에 대한 반성적 질문들과 맞닥뜨린다. 그것은 그의 자유가 지나친 향유가 아닌가, 나는 타인들의 부자유에 책임이 없는가, 라는 물음에서 비롯한다. 이 물음 때문에 세상을 휘날리는 시인의 춤은 기우뚱 말리며 고즈넉한 숙고의 대롱을 만든다. 방랑 충동의 관성은 다시 그걸 풀어 자유의 부채를 펼치고, 다시 반성적 질문이 그것을 다시 마는 운동이 반복적으로 되풀이된다. 그렇게 시인의 언어는 나가고 멈추고 나가는 행동을 교대하면서, 시를 자유와 반성의 끊임없는 대화로 만든다. 시집 제목의 해바라기리토르넬로는 그 각각을 상징한다.

시인의 반성이 아주 촘촘하다는 점은 특별한 주목을 요한다. 그는 자신의 몸이 스쳐 지나가는 모든 사물들과 존재들에 자신의 행동의 의미를 투영한다. 그가 사용하는 비유의 다양성은 그가 접촉하는 상대의 다양성에서 기인한다. 또한 비유의 확장은 상대의 면모의 확장에서 기인한다. 쉼없이 늘어나는 대상들 앞에서 그는 어김없이 자신의 정당성을 질문한다. 그 점에서 그의 마음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고 노래한 윤동주적 고뇌와 맞닿아 있다.

결국 자유와 반성을 오가는 활달한 대위법, 그리고 반성의 촘촘함이 최문자 시인을 이형기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다. 이는 시인의 시적 수련의 원숙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며, 이형기적 시 정신의 계승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수상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덧붙여, 마지막까지 수상 후보로서 경쟁하였던 나희덕 시인의 가능주의자에 대하여 아쉬움과 격려를 보낸다. 시인은 자욱하고 흥건한 시대라고 자신이 명명한 이 세계에서, 가난하고 헐벗은 삶들을 복원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다. 이 시집 역시 역시 수상작이 되기에 손색이 없지 않았으나, 이미 다른 상을 수상한 사정이 있는 데다가 연륜을 고려하여, 유보하기로 했다. 그 결과에 관계없이 시인의 문학적 성취에 깊은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