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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눈의 조리개로 세상 살 맛 느끼기 - 양애경의 『읽었구나!』 본문

울림의 글/시집 읽기

겹눈의 조리개로 세상 살 맛 느끼기 - 양애경의 『읽었구나!』

비평쟁이 괴리 2022. 9. 29. 03:28

※ 아래 글은 2022년도 김종철문학상 수상시집에 대한 심사평이다. 며칠 전 『문학수첩』  2022년 하반기 호에 발표되었기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블로그에도 올린다.

양애경 시인의 새 시집, 읽었구나!(현대시학, 2021)가 풍기는 시정(詩情)을 따라가다보면, ‘달관(達觀)’이라는 흔했던 옛말을 떠올리듯, 세속을 다 알아버린 듯한 마음새가 노골적으로 배어나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런 심보를 가진 시인은 꼬마 도깨비처럼 온갖 세상살이의 속곳으로 파고들어가, 훔쳐 보고 살맛보고, ‘흐음, 먹을 만 하네혹은 에이, 별거 아니네뇌까리고는, 그 등을 타넘으며 휘리릭 날아간다.

이런 활달함을 일으키는 것은 시인 특유의 눈조리개 운동이다. 그는 어린이의 시선과 늙은이의 시선을 포개 놓은 특이한 겹눈으로 세상을 본다. 어린이의 시선은 모든 세상의 물상들을 처음 접하는 새로운 정보로 알고 통째로 빨아들인다. 이런 식이다.

두 팔, 활짝 / 보랏빛으로 펼치고 / 안은 하얀 사기 사발처럼 / 비어 있는 / 나팔꽃 피었어요”(나팔꽃 안)

 본 것에 대한 경험적 축적이 거대한 방아를 돌리고 있다. 즉 본 것은 나 혹은 누군가에 의해 해석되고, 그것은 다시 내게로 수용되어 나의 삶의 자원이 되고, 그리고는 수용과정 자체가 경험으로 쌓인다. 그래서 삶은 거듭 신기한 발견으로 생기를 얻는다. 그런데 모든 어린이들의 생장과정이 그렇듯, 이 과정은 에너지를 일으키면서도 동시에 에너지를 탕진시킨다. 정돈이 안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어른들의 조정에 낚이게 된다.

양애경 시인의 시에는 그 어른의 과정이 외적 조절의 형식으로가 아니라, 내적 경험의 결과와 추억의 형식으로 개입한다. 즉 그는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든 어린이의 입장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마주하는 모든 경험들을 생의 질료로 삼아 한껏 발산의 형상을 구하”(김수영의 시구를 빌리자면)는데, 그 몸짓이 실은 현실 속에서 빈번히 꺾이고 지워지고 말았다는 아린 경험을 갈수록 두껍게 비축하게 된다. 그로부터 아픈 기억들의 위안과 현실에 대한 은근하고도 냉정한 비판이 저 생동하는 몸짓 안에서부터 스며나오는 걸 목격할 수 있는데, 그러나 이 착한 노인의 시선은 발랄한 아동의 기운을 입고서, 은근한 나무람을 담은 자애로운 용서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

물론 시인이 그렇게 하는 것은 못된 현실을 방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나간 일이라도 어찌 됐든 스스로 고쳐살아 좀 더 나은 현실로 바뀌어지기를 바라서인데, 살다 보면 그런 일들이 인간의 몸 안에서 여러 번 되풀이해 또 나타날 조짐이 다분하기에 독자들에게 혹시라도 자신들에게 닥칠지도 모르니 마음에 담아 두라고 귀띰하기 위해서이다. 그럼으로써 양애경 시들은 그래도 그런대로 재미있는 삶”(단추고르기)이라는 말 속에 그래도’(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따가운 경고를 담고서 독자를 깡총거리며 뛰어가는 흥겨운 소풍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가만히 반추해 보면, 이러한 즐거운 원족은 김소월의 먼 후일과도 깊은 친연성을 가지고 있고, 미당 서정주의 천연덕스런 능청의 갱신된 버전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라, 한국시사의 한 줄기를 음미하는 맛도 제공하리라 생각한다.

양애경 시인이 김종철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일은, 본래 삶의 평범한 물상들 속에 숨은 사회적 의미를 예리하게 부조해 온 김종철 시인의 시 세계를 인간적 의미로 확대하는 작업의 하나가 되리라 생각하며 수상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