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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일상성과 예술의 파탄 -채영주의 「도시의 향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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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일상성과 예술의 파탄 -채영주의 「도시의 향기」

비평쟁이 괴리 2023. 2. 2. 10:57

우리나라에서는 개봉되자마자 종영되었기 때문에 작가가 그것을 보았는지 모르겠으나, 「도시의 향기」는 영화 『바톤핑크』와 간-텍스트적 관계에 놓여 있다. 문화적 압제와 야생의 미친 폭력 사이에 끼여 파괴당하는 한 예술가의 영혼을 보여주고 있는 그 영화와 대비해, 소설에서 문화적 압제는 차가운 일상성으로 대치되어 배경으로 깔리면서 광기의 날 폭력에 무참하게 무너지는 예술가의 삶이 전면에 부각되어 있다.
그러나, 소설은 영화와 섬세하게 차이지면서 영화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제기하고 있다. 크게 두 가지. 하나는, 광기의 날 폭력은 차가운 일상성과 어긋나 있는 게 아니라 은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옆방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그 기괴한 연결이 내지르는 소음이다. 아니, 광기는 일상과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차라리 일상의 날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예술가의 위상이 순수성의 차원에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예술가도 일상성과 언제나 내통하고 있으며 다만 그는 그것을 자신의 예술적 욕구를 다양한 방식으로 후원하고 보호하는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전화벨 소리는 옆방에서 울릴 뿐만 아니라 바로 그의 방에서도 빈번히 울린다.
때문에, 그의 작업대 위에는 영화에서와 달리 바다 장어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인데, 그 바다 장어 사진은 현실과 결탁되어 있으면서 현실에 대해 냉소짓는 물신화된 교만한 예술성을 그대로 지시한다. 그 바다 장어로부터 그는 “죽음의 비밀”을 캐내어 형상화하려고 하지만, 그가 만나는 것은 예술이 성취할 죽음의 비밀이 아니라, 교만한 예술의 죽음이다. 그 예술의 죽음은 바로 예술가의 오만함을 꿰뚫고 쳐들어온 날 것이 된 일상으로부터 온다. 그가 그것을 이용하려 했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연결된 그 연락망을 통해, 그것은 광포하게 쳐들어와 그를, 다시 말해 예술을 둘러싼 그의 교만․믿음․구도를 몽땅 망가뜨리고는 어느새 다시 차가운 일상성으로 되돌아간다. 근대 이후 ‘자율성’의 이름으로 세상과 대결하고 또 세상과 타협해 온 예술, 그 예술의 파탄을 「도시의 향기」는 다시 한번 묻고 있다. 그 물음은 주체 못할 웃음으로 터진다. 다시 말해 예술 자체의 미침으로 터진다.
󰏔 1994, 『’94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현대문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