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건달 사상을 찾는 일의 의미 - 구자명의 『건달바 지대평』 본문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4회 여섯번째 독회에 대한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건달 사상을 찾는 일의 의미
구자명의 『건달바 지대평』(나무와 숲, 2023.03)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첫째, 거의 무명에 가까운 작가의 등장이라는 점이다. 오늘날 문학 출판계의 전략적인 상업 유통망에 의해서 배제된 작가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면, 그것은 그냥 주목받은 게 아니다. 저 문제의 유통망을 찢으며 튀어나왔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의 지배적 유통망이 ‘사생활에 대한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접근’(이는 대중 미디어에서 연예인들이 나와서 잡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으로 한국 문학을 제한하고 있는 상황에 설치된 언어의 철조망에도 약간의 균열이 생겼음을 뜻하기도 한다. 박수칠만한 까닭이 있다.
둘째, 한국인들의 오래된 집단 무의식 중의 한 커다란 덩어리에 충격을 주었다는 점이다. 19세기 말에 한반도에 들어와 조선인에게 무한정 애정을 쏟았던 헐버트(H. B. Hulbert)는 “한국인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신앙은 원시적인 영혼 숭배 사상”이라고 단정하면서, 이는 “정령설 (精靈說), 샤머니즘, 배물교적(拜物敎的) 미신 및 자연 숭배 사상을 일반적으로 포함”(『대한제국멸망사The Passing of Korea』, 신복룡 옮김, 집문당, 2005, [원본발행년도: 1906], p.469)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영혼 숭배 사상은 최길성이 소개하고 있는 秋葉隆의 견해(최길성, 『한국무속의 이해』, 예전사, 1994, p.19)에 의하면 ‘프리애니미즘’과 구별되는 ‘애니미즘’의 특징으로서(그리고 이 견해의 원천은 R.R. Marett의 『종교의 문턱The Threshold of Religion』, 1914에 있다. 나는 이 세 단계의 굴곡을 거쳐서야 겨우 한국 샤머니즘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 “동물, 식물, 자연 대상들의 생기”에 대한 믿음인 ‘프리애니미즘’과 달리, “신령스런 존재에 대한 믿음”(Marett)이다. 따라서 한국인의 영혼 숭배 사상은 동물 등의 자연물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 “불승 또는 도사의 옷을 입고 수염을 늘인” “구름을 탄 노인”(秋葉隆)에 대한 신앙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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