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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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새벽’ 2000년 5월 중간 보고

비평쟁이 괴리 2020. 9. 10. 11:47

아래 글은, ‘언어의 새벽 하이퍼텍스트와 문학의 4-5월 활동에 대한 보고 및 공지 글이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하여 5월의 작품에 대한 선정 소감 및 중간 점검을 이제야 게시합니다.

이 작업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의도에 의해서 움직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문학의 존재 방식의 변화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잘 빚어진 항아리>>라는 말처럼 스스로 완미(完美)한 것으로 흔히 이해되어 온 문학 작품이 링크된 주변의 텍스트들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열린 형식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얻어 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제가 미처 의식하고 있지 못했지만 다른 심사위원께서 일깨워주신 것으로서, 문학의 민주적 교류에 대한 의욕입니다. 아마 기성 문인들과 일반 문학 애호가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작품을 주고받은 행사는 유례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래 문학은 문인들만이 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하는 것으로, 문인이란 좀 더 특별한 문학애호가이고 문학 독자는 누구나 잠재적인 문인입니다. 이러한 문학의 대 원칙을 우리의 작업은 새삼 확인시켜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점에서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글들은 따온 글의 주제 및 정신에 이으려 하기보다는 간단히 단어만을 따와 별도의 글을 작성하는 데 그쳤습니다. 연결된 글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려 하기보다는 고립적으로 존립하려는 재래적인 태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숲의 여행이 단조롭고 또 불편하다는 비판이 여전히 유효합니다. 사실, 단조로움과 불편함은 애초의 구상 단계에서부터 의도적으로 포함된 것이었습니다. <<동영상 음향을 주된 매질로 하고 감각적 반응 시간을 최대한도로 단축하는 하이퍼텍스트를 순수한 문자 언어로만 구성하여 감각적 반응 시간을 가능한 한 지연시키고 그 사이에 사유와 상상이 개입될 여백을 열어놓음으로써, 문자 언어 특히 문학의 고유한 본성인 반성적 활동을 하이퍼텍스트에 심어보고자>>한다는 취지에 그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단조로움과 불편함이 거꾸로 사유와 상상의 여백을 오히려 좁힐 수도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사유와 상상의 촉매로서 기능할 비평 기능이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이제 일전에 예고해 드린 대로 <즉석 비평>란을 신설하고,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비평들을 수록할 예정으로 있어서, 비평 기능은 조금씩 활성화될 것입니다. 현재 시험 가동되고 있는 <즉석 비평>은, 그러나, 아직 여러 면에서 취약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개선할 사항들을 모아 차후에 좀 더 세련된 모습으로 개편할 예정입니다. 더 나아가 전반적으로 메뉴의 다채로운 개발이 요구된다 하겠습니다. 이 점 역시 일전에 공지해드린 대로 준비중입니다.

공식 행사 기간인 4월 19일에서 30일까지 7000여명이 방문하였고 100여 분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글을 올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연령상으로는 만 14세부터 53세까지 아주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하였습니다. 직업상으로도 학생, 주부, 교사, 직장인 등 다양한 분포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겨우 오픈한 사이트이고 또 문학 텍스트가 쉽게 씌어질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숫자는 우리의 작업이 꽤 순조롭게 출발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한, 이 다양한 참여는 한국인에게 문학은, 특히 시는 아주 보편적인 문화임을 알려줍니다. 저는 가끔 농담 삼아, <<브라질 국민이라면 누구나 축구선수이듯이, 한국인들은 모두가 시인이다>>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만, 이번 일을 통해서 그것을 실지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공식 행사가 끝난 후, 5월 1일부터 5월 25일까지 대략 2500여분이 방문하셨고 28분이 56편의 글을 붙여 주셨습니다. 분위기가 급격하게 가라앉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어느 분이 말씀 하셨듯이 격렬한 운동 끝의 휴식기로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도록 구조를 개선하고 참신한 구상들을 도입하지 않는다면, 이 휴식기가 장기화될 수도 있으리라는 불안도 없지 않습니다.

5월중에 글을 올리신 분들 중에 기성 문인과 공식 행사 기간 중 수상하신 분들을 제외한 22분의 40편의 글 중에서 6편을 선정하였습니다(이 자리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해주신 문인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선정 작품은, 이미 공고해 드린 대로

 

곽은영: 릴라가 아픈 날...

김선영: 사해는 깊지 않다....

양희준: 나아가 신을 부정하리다...

유경희: 태양은 자신을 태워...

윤영돈: 사진첩을 들쳐본다....

재뢰아: 하루살이의 양식은....

 

입니다. 우선 유경희 씨의 짧은 글은 하이퍼텍스트에서의 <연결>의 의미를 글에 심으려고 노력하신 점을 샀습니다. 그러나 글이 너무 짧은 데다 범상한 인식을 보여주는 데 그치고 있어서 좀 더 치열하고 깊이 생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곽은영 씨의 글은 소박한 대로 이별과 만남의 극적 상황을 잘 짜고 있습니다. 양희준 씨는 젊은이다운 도전적인 자세와 그 자세를 힘있게 하는 리듬감이 좋았습니다. 다만 생각들의 유기적인 이어짐이 미흡한 것이 흠입니다(특히 두번째 연). 재뢰아 씨의 글도 리듬감이 좋은 글입니다. 씨의 리듬감은 힘차다기보다는 발랄하고 경쾌한 그것입니다. 때로 그 경쾌함이 생각의 가벼움을 반증할 수 있다는 것에 유념하시면 좋겠습니다. 윤영돈 씨의 글은 일상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반추하는 진지한 자세가 돋보였습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문득 김수영 시인의 <아버지의 사진>이라는 시를 떠올렸습니다. 그 시도 일상의 사물에서 시의 원소를 취한,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시였습니다. 김선영씨는 사해(死海)의 물리적 특성과 단어 자체가 주는 의미론적 암시 사이의 차이를 잘 활용한 재치있는 글입니다. 상념의 무거움이 좀 과장적으로 보인다는 것이 약점입니다. “나의 아픔”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