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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저 순백의 치자꽃에로 사방이 함께 몰린다. 그 몰린 중심으로 날개가 햇빛에 반사되어 쪽빛이 된 왕오색나비가 내려 앉자 싸하니 이는 향기로 사방이 다시 환히 퍼진다. 퍼지는 그 장엄 속에선 시간의 여울이 서느럽고 그 향기의 무수한 길들은 또 바람의 실크자락조차 보일 듯 청명청명, 하늘로 열려선 난 그만 깜깜 길을 놓친다. 놓친 길 바깥에서 비로소 破精 을 하는 이 깊은 죄의 싱그러움이여 ! - 고재종, 「장엄」(『그때 휘파람 새가 울었다』, 시와시학사, 2001) 서정의 극점을 비추는 시다. 극점이 보인다는 것은 서정의 표준이 아니라는 뜻도 된다. 서정을 ‘자기의 순수한 제시’라는 말로 요약한다면, 이 시는 그 자기 표현의 끝에서 문득 자아의 소멸을 겪는다. “저 순백의 치자꽃..
본심에 올라 온 시들이 저마다 한국시의 일각을 빛내고 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확인이 될 것이다. 각자의 영역을 얼마나 더 예리하게 벼릴 것인가 혹은 취향의 담장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의 지형을 구축하느냐는 시인들이 시에 저의 몸을 밥으로 준 정도에 따를 것이다. 이원의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모니터, 캔산소, 거울」, 채호기의 「수련」, 「수련의 비밀」, 최승호의 「재」, 「죽음이 흘리는 농담」, 함성호의 「나비의 집」, 「대포항 방파제」를 눈여겨보았다. 날씬한 미녀가 가까이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원 시의 밑바닥에는 오규원의 강력한 영향이 보인다. 그러나 오규원이 사물의 감각적 이미지를 관념 혹은 관념적 사회와의 싸움 쪽으로 끌고 갔던 데 비해 이원은 사물 그 자체의 혼잡으로 판..
* 고재종의 「장엄」 서정의 극점을 비추는 시다. 극점이 보인다는 것은 서정의 표준이 아니라는 뜻도 된다. 서정을 세계의 자아화라는 말로 요약한다면, 이 시는 그 자아화의 끝에서 문득 자아의 소멸을 겪는다. 그 충만과 소멸 사이의 긴장을 장엄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서정=세계의 자아화'라는 상투적인 규정이 매우 그릇된 것이라는 견해를 글로 만든 적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길 바란다: 「‘서정’을 규정하는 이 땅의 희극에 대해서: ‘한국적 문학 장르’ 규정 재고 一‘세계의 자아화’라는 허구 혹은 ‘보편적 자아’의 끈질김」, 『‘한국적 서정’이라는 환을 좇아서』(2020). 이 견해에 근거하면, 「장엄」은 차라리 '서정의 근본'에 육박했다고 해야 하리라. * 김영승의 「瀕死의 聖者」 김영승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