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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취향의 무정부상태를 넘어서 이형기적인 것을 향하여 예심을 통한 ‘여과’의 절차들이 심한 거북함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 그 절차의 합당성을 따지기 위해서라기보다 오늘날 취향의 무정부상태를 생각키우기 때문이다. 시를 시로 세워주는 것이 시의 ‘경향’은 아닐 것이다. 서정시든 미래시든 도시시든, 어떤 명명으로 시들을 가두건, 그 안에서도 좋은 시와 나쁜 시는 따로 갈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시의 잘 되고 못 됨을 단순히 시의 짜임새에서 구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한 때의 형식주의자들이 생각했듯이 좋은 시가 “잘 빚어진 항아리”와 혼동될 수는 없는 법이다. 왜냐하면 시의 성취 속에는 그 성취의 기준을 돌파하는 사업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파괴를 통한 부활의 작업이 없다면 인간이 어디에서 인간..
김명인 시인의 『길의 침묵』을 요약하는 시구가 있다면, 그것은 “모든 가계는 전설에 도달한다. 그리고 뒷자리는/늘 비어서 쓸쓸하다”(「할머니」)일 것이다. 시인의 눈길은 그 “뒷자리”에 가 닿아 있다. 그 뒷자리에는 문득 멈추어버린 생의 잔해들이,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진액이 다 빠져나간 술지게미의 일상”이 적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적막한 폐허의 풍경을 시인의 명상은 꿈결인 듯 허정허정 헤매이는데, 그 꿈결의 리듬이 이 폐허에 전설의 품격을 부여하고 있다. 물론 명상 속에서 태어나는 전설은 실제의 전설처럼 장엄하지 않고 애잔하며, 삶의 성화로 기능하지 않고 반추로 기능한다. 그것은 시인의 명상이 세상의 진행에 대해 같은 규모로 반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혜순 시인의 우파니샤드 서울』은 그 ..
바닷가 물새 바닷가 물새 한 마리. 너무 작아서 하루 종일 헤맨 넓이 몇 평쯤일까. 밀물이 오면 그나마 찍던 발자국도 다 지워져버리고 갯벌은 아득한 물 너비뿐이다 물새. 물살 피해 모래밭 쪽으로 종종쳐 걸음을 옮기다가 생각난 듯 다시 물 가장이로 돌아가 몇 개 발자국 더 찍어본다 황혼은 수평선 쪽이고 아직도 밝은 햇살 구름 위지만 쳐다보는 저무는 바다 어스름이 막 닫아거는 하늘 저쪽 마지막 물길 반짝이는 듯. (김명인 시집, 『길의 침묵』, 문학과지성사, 1999) 이 풍경은 훤하게 넓어져 가는 운동 자체이다. 시를 읽는 시방도 풍경은 시나브로 넓어져가고만 있다. 이 훤한 넓이가 어디에서 오는가? 저 햇살에서? 아니다. 그것은 바닷가에 발자국을 찍는 물새의 아주 작은 움직임에서 나온다. 그것이 작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