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2014년 이한열 문학상 시부문 심사평 본문

심사평, 추천사 등

2014년 이한열 문학상 시부문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2. 12. 5. 08:37

김희원의 가을을 즐기지 못 하는 딱 하나는 섬세한 관찰력으로 바깥의 풍경을 세계의 의미로 바꾸어 놓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 세계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소망과 행동으로 경계를 신축(伸縮)하고 색채를 바꾼다. 정서와 외관의 조응이 실감을 준다. 하지만 기본 태도가 동시(童詩)적이지 않은가는 스스로 물어봐야 할 것이다. 동시는 이미 있는 세계 속에서 노니는 데에 만족하지만, 시는 새로운 세계를 여하히 창조할 것인가 하는 고투에 뛰어든다. 고은비의 스물 하고도 일곱은 세상과의 소통에 곤란을 겪는 젊은이의 의식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언어의 작란을 통해서 이 곤란을 유희로 치환하여, 소통불가능을 실연하는 한편 동시에 그 불가능성을 견디어내는 인물의 잔꾀를 재치있게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 대한 존재의 저항과 도전까지 보여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신진용의 목줄은 두 인물 사이의 폭력적 상황에 대한 상상을 일인칭 화자의 대화형 진술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두 인물 사이의 관계의 변화와 그에 대한 화자의 극단적이고도 이중적인 감정에 의해서 이 진술은 미묘하고 복잡한 여러 겹 마음의 층으로 두꺼워진다. 이 여러 겹 마음의 동시적 제시에 의해 시의 외면은 매우 다채로운 빛을 발하며 그것이 이 시의 매력이다. 다만 독자는 도대체 이 사태의 사연도 모르고 까닭도 모른다. 그것을 궁금하게 여길 매개물이 이 시에 없는 게 아쉽다. 백지원의 발화점은 현실로부터 외면되어 외진 곳에 내몰린 존재의 심리적 상황을 기괴한 이미지들의 연속적인 배치와 다각적인 교체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얼핏 읽으면 요령부득으로 덧칠된 그림이지만 찬찬히 살피면 현실에 대한 인물의 불안과 공격성, 체념과 의지, 숙고와 행동이 긴밀히 교환되면서 활발한 운동의 정황을 구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기에 화자를 슬그머니 상황 속에 개입시켜 무거운 시적 상황을 가볍게 돌아볼 통로를 열어놓고 있다. 단 이미지들이 정당하게 동원되었는지 작위적으로 끌려 나왔는지에 대해 쓴 사람의 깊은 복기를 요한다 할 것이다. 현실과 대결하는 운동을 끈질기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 가산점을 주어, 백지원의 발화점을 당선작으로 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