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프랑수아 비용의 「투구장수 아낙이 노래하는 한탄가」 본문

울림의 글/언어의 국경 너머에서 만난 이 한 편의 시

프랑수아 비용의 「투구장수 아낙이 노래하는 한탄가」

비평쟁이 괴리 2020. 12. 1. 21:56

엊그제 써서 올린 오늘의 썰렁담 2020.11.29.에 거론된 프랑수아 비용의 시 투구장수 아낙이 노래하는 한탄가를 기왕 말 꺼낸 김에 독자들께서 읽어보시라고 여기에 올린다.

 

 

투구장수 아낙이 노래하는 한탄가

 

프랑수아 비용François Villon [1]

 

47

 

그 옛날 투구장수 아낙이라 불리던 갈보가

아가씨 시절을 그리워하며

이야기하는 한탄의 소리를

들은 바 있는데 이러한 것이었도다.

〈아, 무정하고 잔인한 늙음이여

어찌하여 그대는 나를 이처럼 무참한 몰골로 만들었는가?

죽으려고 칼을 든 이 팔을 붙잡고

가로막는 자는 그 누구인가?

 

48

 

〈그대는 아름다움이 나로 하여금

학자나 상인이나 교회 사람들 위에

나의 커다란 권한을 빼앗아갔도다.

사실, 그때에는 이 세상에 태어난 남자라면

이제는 거지 떼도 거절하는 그것을

주기만 하였던들,

아무리 후회가 되더라도

그의 전재산을 나에게 주지 않은 자 없었으리라.

 

49

 

〈많은 남자들에게는 그것을 거절하고

한 꾀많은 젊은이에 대한 사랑 때문에

나는 그에게만 그것을 아낌없이 주었으나

나의 분별 없는 소행이었도다.

다른 남자들에게도 반한 체하기는 하였지만

진정으로 나는 그 남자만을 사랑하였도다 !

그런데 그는 나를 가혹하게 다루기만 하였고

내 돈을 노리어 나를 사랑했을 뿐이로다.

 

50.

 

〈그러나 그가 나를 아무리 가혹하게 다루며

발길질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내 허벅지를 잡고 질질 끈다 하더라도

포옹을 하라고 하기만 하연

나는 모든 고통을 잊어버리고 말았도다 !

그 악마의 화신인 악한에게 안겨 버리기만 하면……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도다 !

그런데 지금 내게 무엇이 남았는가? 수치와 죄뿐이로다.

 

51

 

〈이제는 그 사람도 죽어 30년이 되었고

나는 남아 백발의 할망구가 되었도다.

아 ! 그 꽃 같은 시절을 생각하며

그때 나는 어떠했고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발가벗고 이 내 몸을 바라보니,

빈약하고 메마르고 여위고 가느다랗고

이루 말할 수 없이 변해 버린 모습이라

나는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도다.

 

52

 

〈어떻게 되었는가, 저 반드러운 이마는,

금발의 머리는, 활 모양의 눈썹은,

넓은 眉間은,

어떤 똑똑한 남자도 사로잡은 매혹적인 눈동자는.

크지도 작지도 않게 뻗어 나온 아름다운 코는,

멋있게 붙어 있는 귀는,

흠 파인 턱은, 잘 생긴 훤한 얼굴은,

그리고 주홍빛의 예쁜 입술은?

 

53

 

〈저 부드럽고 가날픈 어깨는,

늘씬하게 뻗어내린 팔은,

가느다랗고 긴 손은, 자그만 젖꼭지는,

사랑의 시합에 견디기에는 안성마춤의

똥똥하고 드높은 궁둥이는, 넓은 허리는,

단단하고 통통한 넓적다리 사이의

자그만 정원 속에 들어앉은

사랑의 陰部는?

 

54

 

〈지금은 이마에 주름이 지고

머리는 회색으로 물들고 눈썹은 희미하고

웃음 띤 시선으로 많은 상인들을 사로잡은

눈은 빛을 잃고

코는 비틀어져 귀여움이 사라지고

귀는 늘어져 잔털로 덮이고

얼굴은 창백하게 메말라 생기가 없고

턱은 일그러지고 입술은 쭈글쭈글하게 되었도다.

 

55

 

〈이것이 인간의 미의 마지막 결과로다 l

팔은 휘어지고 손은 쭈그러들고

어깨는 구부러졌도다.

유방은? 형편없이 시들어 버리고

궁둥이는? 유방과 다름이 없으며

음부는? 제기랄이요!

넓적다리는? 벌써 넓적다리가 아니라

피골이 상접하여 순대처럼 얼룩지고 말았도다.

 

56

 

〈불쌍한 바보 같은 노파들도

얼른 타다가 꺼져 버린

삼대의 희미한 불 곁에

실뭉치처럼 모이어

엉덩이를 갖다대고 웅크리고 앉아

꽃 같은 시절을 그리워하나니

우리들도 옛날에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

이것이 남녀간 모든 인간의 운명이로다.〉

 

프랑수아 비용(François Villon, 1431-1463 이후?)15세기 타락 속에 허우적대던 프랑스 신학교 예비 지식인들 속에서 태어난 시인이다. 그는 범죄자였으나 그의 시는 너무도 생생해, 문학사들은 그가 최초로 개인을 노래한 시인이었다고 공통적으로 기록한다.

그 이전에 시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개인을 노래한 최초의 시인이라는 점에서 그는 프랑스 최초의 근대 시인이라고 일컬어진다. 여기에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있는 투구장수 아낙의 목소리는 오로지 그만의 것이라는 것이다. 그의 개인의 목소리는 그보다 2세기 전의 뤼트뵈프(1230-1285?)의 다음 시에서의 화자와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네.

내 가난에 대해 할 말로 치자면

넘쳐나기만 하네.

주님의 이름으로 프랑스의 고귀한 임금께

간청하노니 제게 몇 푼만 베풀어줍소서

제게 엄청난 은혜가 되겠습니다.

저는 이웃들의 은혜로 살았습지요.

제게 꾸어주거나 신용으로 대출해주셨지요.

뤼트뵈프, 「뤼트뵈프의 가난 La pauvreté de Rutebeuf」[2]

 

두 시가 모두 를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비용의 는 유일무이한 인데 비해, 뤼트뵈프의 는 빈민층을 대표하는 목소리라는 게 일반적인 프랑스 문학연구자들의 해석이다. 한국의 독자들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1] François VILLON, 유언시, 송면 옮김, 문학과지성사, 1980, 101~105.; François VILLON, Œuvres complètes - Éditions établie par Jacqueline Cerquiglini-Toulet, avec la collaboration de Laëtitia Tabard (coll.: Pléiade), Paris: Gallimard, 2014, pp.61~64. : 인용된 대목에 제목을 붙인 것은 후대사람들이다. 원래 시 대목은 유언시 Testaments의 일부이다.

 

[2] RUTEBEUF, Poèmes de l'infortune et de la croisade. - Traduction en français moderne par Jean Dufournet, traduit par Jean Dufournet, Paris: Librairie Honoré Champion, 1979, p.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