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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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의 글/시집 읽기

최규승의 『속』

비평쟁이 괴리 2020. 9. 7. 11:30

최규승의 (문학실험실, 2020.08)을 읽다 보면, 어렸을 때 말로, ‘난닝구를 입고 바람부는 들판에 서 있는 사람이 떠오른다. 이 이미지는 김수영의 에서 동풍을 맞으며 발밑에서 풀의 운동을 느끼는 인물의 그것과는 정반대에 위치한다. 의 인물이 발목의 감각을 통해서 생의 원기를 주입받고 있는 데 비해, 내가 떠올리는 최규승의 인물은 바람을 맞고 다 헤어진 런닝셔츠를 통해 존재의 해체를 겪고 있는 중이다. 삶이란 끊임없이 존재가 허물어지는 과정이다.

요컨대 최규승의 시를 감싸고 있는 마음은 허무함이다. 그러나 또한 그 마음의 심지는 여전히 단단하게 살아 있어, 자신의 거죽이 무너지는 것을 슬퍼한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저의 넋을 애도하게 한다. 그는 라마르틴느Lamartine처럼 넋두리의 강을 흘러간다.

나는 이런 낭만적 토로를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를 계속 읽는 까닭은 그 태도의 진솔성 때문이다. 그 진솔성을 보장하는 것은 저의 운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다. 그는 원망하지도 억울해하지도 않는다. 다만 슬퍼할 뿐이다. 그런 도중에 강가의 낭창한 버드나무처럼 수일한 이미지도 태어난다. 아마도 이 시집의 최고의 절창으로 생각되는 시는 나무 숲 기린(76~79)이다. 긴 시이기 때문에 독자가 직접 읽어보시길 권하며, 시인의 깊은 속내를 비추어 보여주는 대목만을 소개하기로 한다.

 

롯폰기잇초메 아크힐즈를 오르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여자

주일 스웨덴 대사관 앞 어린이 공원

숲은 나무를 나무는 숲을

인정하지 않는 밤

벤치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던

젊은 여자 홈리스

겨울밤 눈바람에 여밀 옷깃이 아쉬워

몇 번인가 오르내리던 에스컬레이터

검은 물결은 가물가물

여자는 내려오는 계단을

영영 밟지 못했다

아크힐즈보다 더 높은 무중력의 세계

언덕도 에스컬레이터도 계단도 없는 곳

 

이 대목을 이해하는 단서는 5-6행의 숲은 나무를 나무는 숲을 인정하지 않는 밤에 있다. 나무의 본령은 대지에 뿌리내리고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는 완전체에 있다. 미르치아 엘리아데가 일찍이 나무에서 우주의 상징을 본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 나무와 숲은 분리되어 있다. 나무는 뿌리내림을 상실했고, 숲은 하늘로 뻗어가는 자세를 잃어 버렸다. 나무로 비유된 홈리스의 여인은 지상으로 추락하는 게 아니라 까마득히 올라가 있다. 저 옛날 현실에서 끝없이 오르내리던모습이 투영되는 도중에 문득 현실의 끈을 놓아버린 사연이 겨울밤 눈바람처럼 그 모습을 갈라 놓는다. 홈리스의 여인은 벤치에 누워있지만 그녀의 눈이 박힌 곳은 저 하늘이다. 그녀는 이제 내려오지 못한다(올라가지 못한다,가 아니다.) 왜나하면 현실의 더러운 검은 물결을 건너가 버렸으니, 더 이상 그 물결에 휩싸일 가능성도, 방법도, 의도도 없기 때문이다.

노숙자의 형상을 이렇게 숭고하게 빚은 이미지는 처음 보았다. 이 이미지를 시인은 제목을 통해 기린의 이름으로 압축한다.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은 실로 사슴이라기보다 기린이다. 그리고 다시 시인은 1연에서 기린맥주를 마시는 할머니로 이동시켜, 하늘로 올라간 홈리스 여인과 세파에 살아남은 일상의 노인을 슬그머니 접근시킨다. 그 둘 사이를 독자의 마음은 천천히 진동하며 오간다. 점점 빨라진다. 앞에서 보았던 허무한 마음과 그 마음을 응시하는 심지 마음이 여기에 와서 서로에 대해 장력을 얻는다. 환유의 기능이 썩 여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