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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의 글/시집 읽기

장현의 『22:Chae Mi Hee』

비평쟁이 괴리 2020. 7. 25. 16:46

일간지의 서평란이 준 갑갑함(직전 글: 일간지들의 서평란, ‘사막의 글’)에서 해방되려고 이 책 저 책 시집들을 뒤지다 장현의 22: Chae Mi Hee(문학과지성사, 2020.06)을 발견하였다. 이 시들은 기본적으로 일기이며 왜 일기를 쓰는 지 시인은 명료하게 알고 있다. “선생님 제가 할 줄 아는 것과 하고 싶은 건 일기 쓰는 것밖에 없습니다.”(Monday, July 1, 2019) 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시구는 그 이유의 핵심을 보여준다.

 

참지 못하고 그늘을 찢고 나온 학생들은. 별의 폭발음에도 호들갑 떨지 않으며 피로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보며 걷습니다. 발을 절며 따라가는 신입생 그리고 학생들은 길로 들어갑니다. 학교 바깥으로 조금만 나가면 길에서 길로 길에서 오직 길로 이어집니다. 길은 말을 합니다. 제가 또 이상한 것을 듣고 있는가요. 땀을 뻘뻘 흘리는 태양이 묻습니다. 그만 이 지긋지긋한 자전을 멈출까?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여기에 없으셨습니다. 저는 있어야 합니다.(2017516일 화요일)

 

이 대목은 언뜻 규정에 대한 강요와 성취에 대한 요구로 짓눌린 어린 학생들이 저마다의 세계로 도피하는 모습을 영사의 방식으로 따라가고 있는 듯하지만, 앞뒤 문맥과 연결시켜 읽으면 훨씬 복잡하다. 이는 세상의 공식적인 언어들, 즉 상투화된 규정, 억압적인 명령들을 피해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가려는 학생들의 행로도 실은 공식적 세계 속으로 편입해 들어가고 마는 광경을 이면에서 보여주고 있다. 모든 사적인 것들은 공공의 그물이 던져지는 순간, 현실의 주형틀 안으로, 그 거대한 아가리 속으로편입되게 되어 있다.

일기는 아마도 그 공공의 이름이 배제된 거의 유일한 영역으로 고안된 것 같다. 그는 책을 벌레처럼 뒤집어놓고 일기를 써야지라는 구절을 통해, 책조차도 상투화된 세계의 잔여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날카롭게 암시한다(내가 앞의 글에서 언급한 서평란 속의 책들을 상기하시라.) 그러니 일기를 쓰는 것이다. 그 일기는 책을 벌레처럼 뒤집어 놓아야 써진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일기는 필사적인 저항이다. 그의 언어는 거의 예언조를 띤다.

 

 

미래는 곧 날조로 가득 찰 것입니다. 목적 없는 우리는 관용을 베풀 것입니다.

 

첫 문장은 암담한 저주이지만, 뒤 문장은 명백한 윤리적 원칙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는 왜 사는가,를 묻고 어떻게 사는가에 대해 대답을 내어야 하는 것이다.

좋은 신인을 보았다. 20여년 전 이준규를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이다. 이준규는 등단 이후 거의 10년을 외면 속에서 지냈었다. 이번에는 좀 더 사정이 나을까? 글쎄... 그때와는 다른 방식의 울타리가 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그를 오늘날의 어떤 프레임으로, 별나게-튀는-세계의 멋드러짐 같은 것으로 가두어 상품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는 그런 것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의 목적에 비추어, 치밀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 옛날의 저항자들, 순교자들, 희생자들이 보여준 다양한 행위들을 참조하면서. 그들이 희귀한 승리뿐만 아니라 좌절과 타협의 풍랑을 타고 어디론가 갔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의 선생님들까지 포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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