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오늘의 썰렁담 2021.01.09. 본문
✍ 새해가 밝았다. 눈도 많이 왔다. 불행하게도 이 눈은 바둑이의 눈도 아니고 김수영의 눈도 아니다. 『설국』은 아예 목구멍 밑에 쭈그리고 앉아 감히 나올 엄두를 못낸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이 눈은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에서 지나치리만치 요약적으로 묘사된, 변덕스런 어느 봄날의, “적대적인 회오리 바람이 검은 구름장으로부터 회백질의 눈발들을 뿜어내어, 수인들의 얼굴과, 등, 다리 등을 가리지 않고 마구 회초리질 하면서, 외투와 양말을 선득한 축축함으로 젖게 하던”(Alexandre Soljénitsyne, L'archipel du Goulag 1 - tome 4 des œuvres complètes, Paris: Fayard, 1973, epub verseion) 그런 눈, 아무런 까닭도 목표도 비치는 게 없이, 사이코패스의 무심한 표정으로 저의 잔혹함을 방앗간의 피댓줄처럼 기계적으로 실행하는 그런 눈이다.
✍ 조금 전에 읽은 다음 문장은, 이런 신년(腎年)에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나에게 본능은 무의식적 완전에 속한다네. [그래서] 내 그림은 의식된 불완전들로 생동하지. 나는 오로지, 내가 다른 것에 대한 신뢰를 곧바로 갖지 못하고 어떤 경우에도 그림이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 아닌지 나 자신이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리기에 앞서서 신기한 확정개념들을 만드는 짓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내 안에 신뢰를 갖는다네. - 니콜라 드 스탈 Nicolas de Staë̈l, “장 아드리앙에게 보내는 편지” 1945년 3월. in Guitemie Maldonado, Nicolas de Staël, Paris: Éditions Citadelles & Mazenod, 2015, p.27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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