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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썰렁담 2020.12.27. 본문

단장

오늘의 썰렁담 2020.12.27.

비평쟁이 괴리 2020. 12. 27. 16:42

너무나 유명해서 주를 달 필요가 없는 역사에 관한 마르크스의 말이 있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의 첫 문단이다.

 

헤겔은 어디에선가 모든 큰 사건들과 역사적 인물들은 두 번 되풀이 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가 빠뜨린 게 하나 있으니, 처음엔 비극이 되고 두 번째는 희극이 된다는 점이다.

 

지금 그 두 번째 사이클이 한국에서 돌아가는 모양이다. 악착같은 괴성들이 무더운 여름의 매미소리처럼 극성스러우나 멀찌감치의 해먹에서 들으니 비 온 후 논밭과 산자락에서의 맹꽁이들의 울음소리나 그것들이나 은은히 멀어지는 기적소리처럼 들려서 미소가 조는 자의 입가에 슬그머니 번진다. 그러다가 바로 얼굴이 굳어진다. 문제는 희극은 만족을 유발해야 마땅한데, 그러나, 웃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마르크스도 빠뜨린 게 있다.

 

최근의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깨달은 게 있으니, ‘적그리스도는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환상을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본래의 그리스도는 추호도 소유하지 못한 괴력을 발휘하게 되지만, 그가 그 자신의 의지로부터 발동되었다고 생각한 그것은 단지 그를 그렇게 만든 이들의 욕망의 총화일 뿐이다. 어느 때가 오면 그가 한순간에 붕괴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1986)이 얼마나 단순한 소설인지 알겠다. 그리고 새삼 환기되는 것은, 세상의 독자들은 단순한 소설에 열광한다는 것이다. 단 그 대가로 죽음 다음의 수명이 그리 길지는 못할 것 같다. 고인에게 미안한 말일 수도 있겠으나, 대부분 사람의 운명이 그러할진대, 살아서 누린 명성이 복락임을 부러워하는 말이다.

 

그리고 니체의 말년의 유고 모음에서 뽑은 말. 니체 누이가 고의적으로 빼먹었다고 하는.

 

반유태주의의 정의:시기. 회환, 본능의 반복적 회귀와 같은 무기력한 분노. ‘선민’이라는 억지 주장. 입만 열면 거창한 말과 도덕을 들먹이며 훈계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가장 완벽한 방식. 특징: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판에 박은 듯 누구와 닮았는지 모르고 있다. 반유태주의자는 시기심 많은 유태인이다. 다시 말해 가장 멍청한 놈이다. […] 반유태주의자와 유태인을 구별짓는 것이 무엇인가? 유태인은 거짓말을 하면서 그것이 거짓말인지 안다. 반유태주의자는 항상 거짓말을 하면서 그것이 거짓말인지 모른다. (Friedrich Nietzsche, Fragments posthumes (1888-1889) - Textes et variantes établis par Giorgio Colli et Mazzino Montinari, traduit par Jean-Claude Hémery, Gallimard, 1977, p.322; 번역은 프레데릭 파작, 『거대한 고독 - 토리노 하늘 아래의 두 고아. 니체와 파베세』, 이재룡 옮김, 현대문학, 2003, 243쪽에서 재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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