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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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

오늘의 썰렁담 2020.11.15

비평쟁이 괴리 2020. 11. 16. 04:42

오늘 받은 책들을 뒤적거리다 보니, 1970년대 순정만화에서 쓸 법한 제목을 단 시집이 있다. 신기해서 이리저리 보다가 3개월 사이에 무려 5쇄를 찍은 걸 보았다. 과연! 세상이 엄청 변한 것 같아도 바닥 정서는 별로 바뀐 게 없다.

그러고 보니, 같은 출판사의 책 제목들이 장르를 막론하고 유사한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카드 섹션 하듯이. 아하!

 

예술적 전위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은 그들이 겪게 될 고행을 자청한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이 자신들의 역경을 끝까지 치러주길 기대하지만 때로 미궁 속에서 헛발길질을 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전위의 관념에 사로잡혀 전위를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관념에 사로잡히면 원래 꿈꾸었던 것이 도취의 안개로 뿌예지고 조급히 특정한 대상이나 사물이나 사람에게서 상관물을 얻으려 한다. 특히나 전위 실행의 도구, 가령 문학에서라면 언어를 전복하면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경우가 항용 발생한다. 그러나 전위는 삶 전체에서 수행되는 것이다. 인식이 바뀌고 감정도 바뀌고 태도도, 행동도, 행동 수칙도, 타자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도 통째로 바뀌는 것이다. 그렇게 바뀌는 방식으로만 전위는 실행된다. 말 그대로 전위는 새 세상을 여는 최전선에서 투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예술과 문학에 관한 한, 전위의 행로는 결코 모방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존재했고 현존하는 모든 것을 뒤집는 행위이기 때문에 전위가 그리는 형상은 유일무이하다. 따라서 앞서 간 선배의 모습에 홀려서 그 뒤를 따라갔다 하더라도 그는 참고자료일 뿐, 자신이 가야 할 길과는 무관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문학의 기이하게 심심하고도 엽기적인 지형도를 보면서 나는 좀 더 굵은 미래의 산맥들이 융기해주길 간댕이가 붓는 줄도 모르도록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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