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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

오늘의 썰렁담 2020.11.20

비평쟁이 괴리 2020. 11. 20. 20:04

미국은 트럼프가 문제고 한국은 매카시가 문제다. 미국은 벗어나고 있는 중이고 한국은 푹 빠져 있다. 도가닐세, 도가니.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1490년경.

김현 선생의 말년의 핵심적인 고뇌 중의 하나를 이루는

 

사제의 권력은 인간 통제 권력으로 변화된다.[1]

 

는 깨달음은 그만의 독창적인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거의 인지되지 못했으나 오늘날 점점 더 심중해지고 있는 현상을 일찍 짚어낸 것으로, 그이의 사색의 내력과 과정을 찬찬히 추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이 통찰에 접근한 소수의 지식인들이 덧셈의 집합을 이루는 동안에도, 세상은 여전히 똑같은 작동을 되풀이하고 있으며, 이 문제를 바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드물뿐더러,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는 이들의 수도 황차 그렇다는 점에서 절박함의 색조로 내 가슴을 압박한다.

한국인은 지금 이 문제의 가장 격렬한 현장을 통과하고 있는 중이다. 이 스탬피드stampede에 정말 맞서서 버틸 수 있을까, 라는 회의의 먼지바람을 뿌옇게 일으키면서.

나는 지구상의 인간들이 여전히 사회진화론에 갇혀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근대의 벨트를 맴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다음의 벨트로 건너 뛰어 새로 장착할 탈근대인의 몸이 그에 대한 진화적 대안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다만 이 양태가 축적되어 엄청난 부하에 다다를 때 지구에 절멸이 올 거라는 짐작은 거의 기정사실처럼 마음 속에 품고 있다. 그러니 가만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앞 문장에 이어서 김현 선생은 이렇게 썼다.

 

바로 거기에서 푸코는 마르쿠제가 그 한 극단인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만나는 것이며, 블랑쇼나 바타이유의 위반의 문학 • 철학과 만난다.

 

김현 선생의 위대한 점은 이러한 사태에 맞서 문제 해결을 시도한 양극단을 포함하는 모든 시도들을 동시에 견주고 무게를 달고 원소들로 나누고 혼합과 반죽을 하면서, 자기의 길을 필사적으로 찾으려고 노력하는 한결같은 자세에 있다. 그이의 연금술이 성공한 적도 있고 실패한 적도 있지만, 그 태도만이 돌파의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다. 또한 김현 선생의 그 시도가 바로 효과를 보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혼돈의 실타래를 풀 실마리를 뽑게 해주는 일이리라. .

오늘의 이 험악한 세상에서도 내가 오롯이 따를 길은 그것밖에 없다. 김현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극단으로 나아간 정신의 모험가들의 편력을 대각선으로 꿰뚫어 가면서 내 삶의 씨실들과 엮어서 피륙을 짜는 작업을 되풀이해야 한다. 오로지 거기에서만 내 정신의 ATP가 생성될 수 있을 것이리니.

 

[1] 김현, 시칠리아의 암소, in ‘김현문학전집 10’ 폭력의 구조/시칠리아의 암소, 문학과지성사, 2011, 6[초판: 1992],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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