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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글

세르쥬 두브롭스키의 '오토픽션' 사례

비평쟁이 괴리 2021. 9. 4. 15:51

 

며칠 전 세르쥬 두브롭스키가 ‘오토 픽션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사정에 대해 간단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보완을 위해서, 그가 오토픽션의 이름 하에 펴 낸 소설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올린다.

 

뉴욕에서 프루스트Marcel Proust를 편하게 가르치던 한 대학교수가 어느날 문득 스완 Swann[=프루스트의 『낯선 시간속으로』의 주 인물. ‘우아한 스노비즘’이라고 말할 수 있는 태도의 구현자 – 인용자 주]은 바로 나다라는 발견을 하게 되고, 그 후 기이한 모험에 빠져든다. “‘자신의 부류가 아닌어떤 여자와의 끈덕진 사랑에 휘말려 든 것이었다. 프루스트 작품에 대해 스스로 행한 분석이든, 자신의 상담 분석가에게서 들은 열광적인 강의들이든, 어떤 것도 그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실존을 뒤엎어버릴 열정의 질주에 속절없이 빨려들어간다.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는 동안, 그는 어쨌든 스완과는 다르게 글을 쓰기로한다. 자신의 생을 붙잡기 위하여, 되잡기 위하여. 이 자기 자신과의 필사적인 운산은 따라서 소설의 알리바이를 거부하게 될 것이다. 오로지 오토픽션만이 그 끔찍한 진실의 무게를 날 것 그대로 떠맡게 될 것이니, 그러지 않으면 그것은 오로지 추상적 관념 속으로 도피하게 하거나 아니면 타인들에게 짐을 넘기는 것으로만 해결될 것이다. 20세기 말인 지금 스완 시대의 세련된 우아함은 사라졌다. 오늘의 사람들은 격렬하게 또한 꼼수적으로 창자를 까발기며 자신의 죄악을 과시한다. 오늘날의 사회가 거의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게 된 남자와 여자의 만남은 더 이상 관능적인 발명이 아니라, 비슷하면서도 다른 자들의 야만적인 결투가 되었다. 직업에 강박당한 연인들은 더 이상 애호자가 아니다. 그들은 모두 프로페셔널이 되었다. 청부살인업자가 프로페셔널이듯이. ‘-사랑의 테크닉은 그의 고유한 언어를 요구한다. 그 언어는 거칠고 잔혹하다. 문명은 해체되고, 더 나아가 망가졌다. 머리는 이론을 말하지만, 섹스는 비어를 쏟아낸다. 마음은 궤변을 터뜨린다. 그러나 단어들의 집요한 조작과 소리와 의미들의 급류에 주도권을 내주면서도, 산다는 불행은 조금씩 조금씩 글쓰기의 기쁨으로 변화한다. 이 비극적 이야기는, 이제 뒤돌아보니, 웃음을 자아낸다.

-       세르쥬 두브롭스키Serge Doubrobsky, 『자기 Un amour de soi』(Le Livre de Poche, 1982)에서의 작가 해설

 

198558, 세르쥬 두브롭스키는 일종의 일기를 쓰기로 결심한다. 그 결심을 하게 한 것은, 그가 더 이상 첫사랑을 기억할 수 없다는 데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기는 시작하자마자 중단된다. 부인이 옆에서 남편의 옛 사랑들을 고백하라고 다그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책의 주인공이 되기를 꿈꾸며, 그들의 부부 소설을 솔직하게 날 것 그대로 이야기하라고 요구한다.

세르쥬는 50세의 프랑스 유대인이고 스무살이 될까말까 한 프로테스탄트 오스트리아 여인과 결혼했다. 그들은 아메리카에 거주하며, 세 언어, 두 대륙, 그리고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딸 사이를 지그재그로 왔다갔다하면서 살고 있다이런 식이다.

단번에 책은 둘로 갈라진다. 앞 부분에선 작가의 일기 자체가 『구토La Nausée』[장-폴 사르트르의 소설 – 인용자 주]의 세기말 버전으로 씌어진다. 거기에서 그는 자신의 고독을 추적한다. 후반부에서는 아내가 난입하고 부부 소설이 이제 펼쳐진다. 두브롭스키는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A에서 Z까지. 눈부신 여명Aube에서 지옥의 독보리밭zizanie[=불화의 은유어이다-인용자 주]까지.

갑자기 마지막 장이 씌어지기 전 날, 그는 죽는다(병사인가 ? 자살인가 ») 두브롭스키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내 손 안에서, 내 책은, 내 인생처럼 부서졌다. 이제 보니, 나는 이걸 거꾸로 쓴 것이었다는 것을 무섭게 깨닫는다, 4년 동안 나는 온갖 고생을 다해, 내 인생을 펼쳐 보이면서 결국 화해에 도달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내 책은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폭음으로 가득 찬 실패들, 죽음의 도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세르쥬 두브롭스키는 이 책을 오토픽션이라고 부른다. 그가 소설 제조에 동원한 재료는 자기 인생 밖에 없었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삶과 소설 사이에는 한 치의 다름도 없다. 그가 거기에 부린 은유의 마술을 제외한다면. 결코 본 적이 없는 엄청난 책이다.

-       세르쥬 두브롭스키, 『부서진 책 Le livre brisé(Grasseet, 1989)의 뒷 표지글 (책의 편집자가 짧은 해설용으로 쓴 글이다.) (이 소설은 출간 해에 메디치Médicis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