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베르나르 스티글레르의 떠남 본문

소식

베르나르 스티글레르의 떠남

비평쟁이 괴리 2020. 8. 11. 12:00

며칠 전 베르나르 스티글레르(Bernard Stiegler, 1952.04.01.-2020.08.06.)가 세상과 작별했다. 수년 전 돌아간 클로드 란쯔만Claude Lanzmann(1925-2018)의 경우처럼 우리 언론에선 다루지 않았다.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유럽의 지식인들, 그리고 그들에게 영향을 받아서 자신의 삶의 행로를 선회했던 사람들이 하나하나 세상을 떠나고 있다.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절박한 생계의 곤란에 내몰려 은행강도를 하고 감옥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감옥에서 데리다를 비롯, 유럽 글쟁이들의 책을 읽고, 공부를 다시 해, 기술철학의 대가가 되었다.

그의 생각은 독창적이지 않았으나, 유럽적 사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균형과 명석성, 그리고 공정성에 대한 감각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고, 그것이 그로 하여금 항상 올바른 입장과 유익한 사회활동을 힘차게 밀고 나가게 하였다. 그는 아마도 그러한 공정성의 감각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이론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전적으로 공감한다. 내 느낌을 전해줄 수 있는 그의 글 두어 개를 여기에 소개한다.

 

사회적 결정을 하기 위해 해야 할 실험에 대하여: “실험이 해야하는 역할은 하나가 아닙니다. 모든 과정을 실험들이 선도해야 합니다. 이게 우리가 인정해야 할 첫번째 사항입니다. 법이나 시행령을 통해, 게다가 지역들 저마다의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실제적 수준들을 고려치 않고 이런 전환에 착수한다는 건 생각조차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게 국지(주의)적이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반대죠. 현재 우리는 이런 과정에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참여하면서도 또한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고 비교하며, 이런 목적으로 구성된 진정한 기여 연구팀의 지적과 개입을 받아들이는 영역간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문적이고 영역화된 강좌들의 개설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는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아리엘 키루 Ariel Kyrou 인터뷰, 권오룡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8, 123. 번역부분수정)

 

이윤추구 욕망에 대해: “이익profit에 관한 한 이를 추구하지 말자고 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이익이 없다면 투자도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선 시장으로 국한되지 않는 전망 속에서 그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고사회에 이익이 되는 게 진정한 이익이니까요다른 한편으로 시장의 이익을 위한 전망에 있어서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에는 무엇이 이익이 되는가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합니다. 현재 경제 주체들이 행동하는 방식은 점점 더 내일 일을 알 게 뭐냐라든가 심지어는 한탕 하고 튀어라라는 식의 태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아무런 가치도 없다면 한탕을 해 봐야 뭘 하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이런 게 오늘날 세상을 이끌어가고 있는 투기 행위 형태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앞과 같은 책, 123-24. 번역 부분수정)

 

디지털 사회의 비극에 대해: “완벽히 컴퓨터처리가 가능한 이런 상황에서는 집단적이건 개인적이건 (스스로 품어 볼) 미래전망들protentions은 증발해 버린다. 그것이 우리 비탄의 시대temps de détresse’의 실상이다. 그리고 플로리앙과 그의 세대가 겪고 있는 비극이다. 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인 세대이지만[, 네트워크를 다루는 데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것 같지만-역자 부연].  어느 누구도 세대 간을 서로 연결하고 세대들을 넘나드는 집단적 미래전망을 생산해낼 수 없는 듯하다. 이건 목적없는 끝장sa fin sans finalité (칸트적 이성에 모티프를 제공한 종결 없는 목적성cette finalité sans fin이 아니라)에 이르고 마는 부정적 종말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단절 속에서: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Dans la disruption : Comment ne pas devenir fou?, Paris: Les Liens Qui Libèrent, 2016, p.30)

 

그는 내가 소비만을 가능케 하고 생산을 차단하는 디지털 시스템이라고 말했던 정보화 사회의 괴물적 특성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던 몇 안 되는 지식인이었다. 그는 또한 그렇다고 해서 비난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도 잘 감득하고 있었다. 돌아가기 두 달도 안된 올해 611프랑스 퀼튀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술을 거부해서는 안된다. 그것을 비판하고 바꾸어야 한다.”(https://www.franceculture.fr/emissions/les-chemins-de-la-philosophie/profession-philosophe-6262-bernard-stiegler-il-ne-faut-pas-rejeter-les-techniques-mais-les-critiquer)

너무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셨으니, 인류에 손해가 크다. 그게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이다. ‘명복을 비는 비손은 이 행동가에게는 의미가 적다.

 

 

'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인 김이듬의 미국에서의 문학상 수상 소식  (0) 2020.10.21
김숨의 『떠도는 땅』  (0) 2020.10.19
임종의 순간에 하고 싶은 말  (0) 2014.04.13
레진 드포르쥬  (0) 2014.04.07
알렝 레네 돌아가시다  (0) 2014.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