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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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글

동인문학상 2020년 6월 독회 의견 일반

비평쟁이 괴리 2020. 7. 2. 09:23

이 글은 2020년 6월 동인문학상 독회에 제출된 나의 의견 중, 문학장 일반에 대한 의견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지만,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도 올린다.)

 

지난 30여년의 한국소설에 널리 퍼진 기술법 중의 하나는 심각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고 제재적 다변화를 통해서 암시의 분말을 퍼뜨려 정서적 동조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사소한 것들의 심각성을 부각시켰던 저 옛날 리얼리즘의 방향과 정반대로 나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리얼리즘이 근본적으로 현실에 대한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면, 오늘의 경향은 현실 앞에서의 무기력증을 바탕으로 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러한 무기력증은 현대인들의 일반적 심리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기에 그것 자체가 진실성을 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그런 만큼 제재 다변화는 시야의 폭과 두께를 넓히고 쌓는 방향으로 기능해야 현실에 대한 복합적인 성찰과 세계관들의 상호 개방을 열 수가 있다. 그러는 대신 한 가지 생각을 고집스럽게 움켜쥐고 있는 상태에서는 다양한 형상들과 문체의 변주들은 요란한 화장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그런 자가 분식이 지나친 원심력을 받게 되면 불필요한 세목들이 끼어들어 줄거리가 너덜너덜해지고, 유명인들의 고유명사를 남발하는 쇼케이스 행사가 되기도 하고, 뻔한 주제를 화려한 소도구들을 동원해 벌이는 낡은 알레고리로 떨어지곤 한다. 어느 방향이든 결국은 서술 능력의 증진을 스스로 포기하는 꼴이 된다. 간단히 비유하자면, 마음 속에 일어나는 분노를 어항 속의 물고기를 손으로 압박해 죽이는 것으로 해소하는 처리 방식은, 애먼 물고기만 억울하게 할 뿐이다. 화성에 가고 싶으면 우주선을 개발하는 게 길이다. 엉뚱한 얘기 같지만, 우리 소설에도 일론 머스크가 필요한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