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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효서의 『동주』

비평쟁이 괴리 2011. 12. 8. 01:34

구효서의 동주(자음과 모음, 2011)는 오랫동안 윤동주에게 씌어졌던 상투적인 이미지를 벗겨버리는 과감한 시도를 하고 있다. 요컨대 작가에 의하면 윤동주는 민족시인이라기보다, ‘세계시민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해, 조선인이 됨으로써 세계인이 되기 위해 깊이 고뇌한 사람이다. 그런 윤동주를 작가는 언어에 근거해서 상정할 수 있었는데, , 그의 모어는 조선어이지만, 그가 익힌 언어는 조선어, 중국어, 일본어, 영어라는 것이다.

언어가 정신의 거처라는 생각은 꽤 설득력 있는 생각이며, 이에 근거해서, 작가는 아이누 여자의 야성성-각 인물들의 민족성-윤동주의 세계성이라는 구도를 잡고, 새로운 윤동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구도의 각 항목들은 적당했으나, 그 구도의 각 항목들을 잇는 연결선은 상당 부분 운산하는 머리의 창작, 혹은 우연에 기대고 있다는 느낌이다. 기독교에 대한 회의와 사회주의와 민생단의 문제들, 아이누 여자의 흰 피부, 기타 등등이 막 시작한 장기판의 돌들처럼 어지럽게 소설판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하긴 20세기 초·중엽의 분자생물학에서의 발견 이후, 우연이야말로 진화의 근본 바탕임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필연에 대한 주장은 대체로 독단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그러나 모든 삶이 우연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잘 저작해야 한다. 문제는 우연을 필연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질문을 대답으로 만드는 것이다. (2011.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