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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시집 속에 어른아른 거리는 피에르 로티

비평쟁이 괴리 2020. 6. 22. 06:13

 

강희근 선생이 새 시, 리디아에게로 가는 길(현대시학사, 2020.04)을 보내주셨길래 읽다가 터키 이스탄불에 피에르 로티 언덕이 있다는 걸 알았다(시인은 시, 주말에서 삐에르 로띠라고 된소리로 쓰셨다. 시를 인용할 때는 시인을 따라야 햐겠지만, 공식적인 지명으로는 교육부 표기법을 따라야 할 것이다.) 피에르 로티Pierre Loti는 프랑스 해군장교였던 루이-마리-쥘리엥 비오Louis-Marie-Julien Viaud(1850-1924)의 필명이다. 그는 피에르 로티라는 이름으로 자전적인 소설을 썼는데, 그 첫 소설이 터키 궁전의 여인과 자신의 사랑을 다른 아지야데Aziyadé이다. ‘아티제Hatidjé’라는 여인과의 진짜 사랑에 바탕을 둔 그 허구에서 두 남녀는 이별과 재회의 곡절을 겪고, 남자가 죽은 연인을 위해 터키를 위해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다는 종결로 마감한다. 하지만 비오 자신은 프랑스의 동방정책을 충실히 이행하여 중국을 거쳐 일본까지 진출하였으며, 일본 여인 오카네 산과 결혼하였다고 한다 (https://fr.wikipedia.org/wiki/Pierre_Loti.)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작가가 이런 인연으로 소개되는 걸 보면서, 한국의 세계화의 지형도가 다시 내 머리 속에 떠오른다. 어쨌든 그는 동방을 견문한 중요한 서양인들 중 하나였으니, 언젠가는 그를 읽어봐야 하리라. Gallica에 마침 그의 전집이 있길래 다운로드를 받긴 받았지만, 언젠가가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다. 동방주의자들은 대체로 허구로서 머물고 실제론 전진한다. 그런데 나는 허구로서 나아가고 실제로는 고여 있는 채로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 찝찝한 마음을 데불고 있는 참에, 강희근 선생의 시가 피에르 로티의 태도와 유사하게 더 멀리나아가는 자세를 거듭 보여주는 게 부럽게 읽힌다. 그는 말한다.

 

주말이면 이스탄불의 밤, 나를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마저 없는

머나먼 실크로드의 끝에서 보내고 싶다.(주말)

 

그는 이스탄불에서 로티를 발견하고는 아예 머나먼 실크로드의 끝으로 가고 싶어한다. 아마도 그는, 혹은 그의 시는 정말 거기까지, 아니 거기 너머로 갈 것이다. 그이에게

 

길은 꿈이 아니라 걸어가는

발이다

발은 그 자리 있어서 생애, 시간, 노을 (리디아에게로 가는 길)

 

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