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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새벽’ 여는 글

비평쟁이 괴리 2020. 9. 10. 10:31

아래 글은, ‘언어의 새벽 하이퍼텍스트와 문학의 여는 글이었다.

 

선사시대부터 인류는 자신의 표현과 타인들과의 소통을 위하여 다양한 매체를 개발하여 왔습니다.

그 중 언어는 인간만이 창조해낸 가장 정교한 표현 수단이었으며 문자는 그 언어를 오래 보존케 하고 널리 퍼질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문학은 또한 이 문자 언어로서 해낼 수 있는 고도의 미적 활동이자 동시에 우리의 삶의 뜻을 되새기도록 하는 깊은 반성적 성찰의 장소로서 태어나 발전해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정보화 사회의 비약적 발전과 더불어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여 문자가 주도해 온 인류의 문화에 근본적인 변화를 재촉하고 있습니다. 하이퍼텍스트라는 이름의 이 매체는 동영상∙음향∙언어 등등의 복함매질로 이루어진 매체이자 통신(의사소통) 규격으로서, 세계 네트워크의 핵심인 인터넷을 통하여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직관적인 느낌과 동적인 움직임으로 독자의 감각을 즉각적으로 반응케 하는 이 하이퍼텍스트가 문자 언어를 압도하게 될 지 아니면 문자 언어와 행복한 협력 관계를 유지할 지에 대해서는 속단할 수 없습니다만, 이 새로운 복합 매체가 인류의 아주 중요한 소통 수단 및 미학적 실험의 장소가 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이에 우리는 문학과 하이퍼텍스트가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실험을 해보고자 합니다.

이 실험의 기본적인 의도는 동영상∙음향을 주된 매질로 하고 감각적 반응 시간을 최대한도로 단축하는 하이퍼텍스트를 순수한 문자 언어로만 구성하여 감각적 반응 시간을 가능한 한 지연시키고 그 사이에 사유와 상상이 개입될 여백을 열어놓음으로써, 문자 언어 특히 문학의 고유한 본성인 반성적 활동을 하이퍼텍스트에 심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직 하이퍼텍스트와 문자 언어 사이의 관계가 명료하게 인식되지 않고 있고, 그 관계의 학문적인 규명도 초보 단계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실험도 어둠 속을 더듬거리는 수준에 겨우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색이 지속적으로 쌓여 나가는 가운데 하이퍼텍스트와 문자 언어 그리고 문학 언어의 관계가 올바르게 인식되고 이 매체들이 상호 보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리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