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문학사상』 600호 축하 메시지 본문
※ 『문학사상』이 600호에 이른 걸 기념하여 축하 메시지를 썼다. 이 오래된 잡지가 특정한 '사상'을 주의로 표방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이념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문학적 지향에서도 나와 잘 맞는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잡지는 내게는 '회억 가치 sentimental value'의 품목에 해당한다. 고등학교 때 문학에 유괴된 이후, 나는 문학에 대해 배워야 할 데를 찾지 못한 채, 서점에서 문학잡지를 뒤져보곤 하였다. 그리고 간간이 용돈을 쪼개어 손에 잡혀서 눈망울 속으로 빨려 들어온 것들을 골라 사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산 잡지들이 『현대문학』, 『시문학』, 『심상』 등이었다. 『문학과지성』, 『창작과비평』 등 내가 대학에 들어가 탐독하게 될 계간지들은 내 고장 서점들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아니면 정보가 없었던 탓에 내가 보고도 그냥 지나쳤을 지도 모른다.)
『문학사상』은 고등학생 1학년 시절 가을에 창간되었다. 창간호를 사 읽으면서 이어령 선생의 '권두언'에 매료되었던 순간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의 문학적 취향은 그 이후 엄청난 변모를 겪게 되지만, 나로 하여금 문학을 해야만 하겠다고 결심하게 한 원인 중의 하나였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으며, 그에 대해 이어령 선생에게 감사하고 있다(내가 지금 이 순간, 문학을 선택한 걸 후회하고 있다면, 이어령 선생을 원망해야 할까? 그러나 그건 나의 선택이었지, 이어령 선생의 주술은 아니었다.)
여하튼 『문학사상』이나 '영인문학관'으로부터 다문다문 무슨 청탁이 올 때마다, 사양을 못하는 건, 내 마음 속의 그런 감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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