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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아래는 2023년 대산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이다. 오늘 시상식이 열렸길래 블로그에 올린다. 1차 독회에서는, 예심에서 올라 온 10권의 시집을 검토하였고 2차 독회에서 4권의 후보작을 선별하였다. 김기택의 『낫이라는 칼』, 손택수의 『어떤 슬픔은 함께 할 수 없다』, 황유원의 『초자연적 3D 프린팅』, 황인찬의 『이걸 내 마음이라고 치자』(가나다 순)가 저울 위로 올라갈 대상이 되었다. 최종 심사에선 우선 두 시집을 추린 후에 두 번째 투표에서 수상작을 건지기로 하였다. 심사위원회는 4권의 시집이 모두 수상을 하기에 합당하다는 점에 동의하였다. 네 시집은 저마다 한국 시의 특징적 부면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김기택씨는 언어 세공의 극점을 향하고 있으며, 손택수씨는 개인과 사회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
예심을 통해 올라온 모든 시집을 다 말하지는 못하고 그 동안 이해가 부족했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몇 권 골라 손끝 가는 대로 느낌을 두드려 본다. 김기택의 『소』는 환희는 물론 아니지만 슬픔도 아닌 세계, 어떤 몇 개의 정서들로 결코 요약할 수 없지만 그러나 전율적인 실감을 자아내고 있는 세계를 현상한다. 그 전율적인 실감 때문에 그 세계에서는 모든 감정이 배제되었는데도 억눌린 감정의 응집체 같은 것이 묘사의 울타리를 압박하고 있다. 그 세계는 결코 다른 것으로 변환되지 않고 눌어붙기만 하는 일과(日課)의 세계, 삶이라는 노역이 막막히 덧쌓이기만 해서 형성된 세계이다. 삶이 왜 이 모양인가? 모든 존재와 사물들과 사건들이 철저히 이질성의 상황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만남이 있으나 교통이 없고 ..
본심에 올라 온 시인들의 이름을 읽으며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연령층에 몰려 있었던 까닭이다. 연령 제한이 있느냐고 운영위원회에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한다. 그래요? 흐음. 그렇군요. 오늘의 시는 시의 이상이 숨어버린 시대를 포복하고 있다. 이념의 이정표들은 퇴색하여 기능을 상실했으며 형식적 규범들은 태깔 내는 기교들로 환원되었다. 그 덕분에 작금은 모든 시들이 저마다 이상적 시임을 자처할 수 있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포복의 결과로!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기다가 보면 머리카락 한 올 위의 가시철망이 섬망의 터널처럼 휭 하니 뚫려버리는 것이다. 시적 이상의 공동이 모든 시의 이상성을 보장해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모든 시를 존재적 차원에 붙박아 놓음으로써 시적 산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