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2007년 '현대시 신인상' 시 부문 추천사 본문

심사평, 추천사 등

2007년 '현대시 신인상' 시 부문 추천사

비평쟁이 괴리 2022. 12. 5. 09:06

박헌규의 시는 돌발적인 상상력을 통해 의식을 분해하고 그 분해된 의식 각각에 고유한 형상과 내용을 주어 저마다 제가끔의 방식으로 자라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그의 의식 세계가 펼쳐지는 장소인 시는 해독하기가 쉽지 않은 굵은 의식 줄기들이 매우 혼잡히 뒤엉켜 있는 듯한 형국을 이루는데, 그러나 의식들 사이를 흐르는 윤활한 정서가 있어, 마치 참기름에 잘 버무러진 시금치 무침처럼, 제각각의 의식들을 앞으로 있게 될 잠재된 큰 의식의 세계로 통일시키고 있다. 그 참기름의 역할을 하는 정서적 분비물은 연민에 흡사한 것인데, 그러나 시 바깥으로부터 시에 내려쬐는 고등의식의 연민이 아니라 시 내부의 의식들 자체로부터 분비된 자기 연민에 가까운 한편, 단순히 자신의 외로움과 폐쇄성을 위무하기보다는 근처의 다른 의식들과 교통하기 위한 빈 구멍들을 설치시키는, 자기를 이웃처럼 사랑하고 돕는 감정이다. 애린의 방식으로 실천된 자기애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상식적인 감정의 윤리학은 이웃을 자기처럼 사랑하라는 주문을 낳게 마련인데, 완벽히 거꾸로 형성된 박헌규식 감정학은 각 의식들을 평균적 사고들로 균질화 혹은 하향평준화하지 않고, 각 의식들의 독립성을 더욱 배가시키면서 그것들을 협력시키는 특별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성공 여부를 떠나서 그 시도만으로도 박헌규의 시는 주목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등단을 축하하며 정진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