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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Y의 생존기

비평쟁이 괴리 2016. 2. 15. 07:02

Y는 괴리씨가 편집에 관여하던 잡지로 등단한 시인이다. 괴리씨가 무려 70매에 달하는 해설을 곁들여 세상에 내 놓았으나 오랫동안 원고 청탁도 받지 못한 채로 무명 시인으로 살았다. 그렇게 된 까닭으로는 세 가지 정도가 있었다. 우선 그의 시가 알쏭달쏭하기 짝이 없다는 것. “세상의 모든 시를 시작하리라는 거창한 선언으로 시작한 그의 시에는 미래의 모든 시의 씨앗이 들어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으나 어쨌든 기존의 어떤 시와도 닮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그것이 세상의 모든 시인들과 세상의 모든 시 잡지 편집자들의 몰이해를 야기한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

다음 그의 시에 대해 해설이랍시고 붙은 괴리씨의 글이 또한 난삽하기 이를 데 없었다. 뭔가를 꼼꼼히 분석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도대체 시종이 분명치 않았다. 독자들은 눈에 쥐가 날 것 같았다. 괴리씨의 이상한 습성에 물려 버린 것 같았다. 이상한 습성이란 대상이 된 작가·시인의 스타일을 흉내내는 성향을 가리킨다. 원본이 쉬우면 괴리씨의 글도 쉽게 빨리 끝나고 원본이 고약하면 괴리씨의 글도 곪은 눈두덩 같이 씌어졌다. 마치 검지를 까닥거리면 가운데 손가락도 덩달아 까닥거리고 집이 무너지면 주인 허리가 쑤시는 꼴이었다. 요컨대 괴리씨는 비평가로서의 객관적 거리를 확보하기는커녕 시인의 품속으로 파고들길 좋아하는 사랑의 침입자 같은 데가 있었다. 말이 좋아서 사랑의어쩌구지, 독자 쪽에서는 혹부리 시인의 덤터기 혹에 지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Y가 등단한 잡지의 문단적 위치가 문제였다. 거기는 문학의 본령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이 지나치게 강한 데였다. 그러다보니 선망과 질시가 끊이질 않았다. 거기에서 배출된 작가·시인 중에 먹힐 것 같은 사람은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매 떼들이 달려들어 낚아채려고 수선을 떨지만, 팔릴 것 같지 않으면 문단의 재능 사냥꾼들은 일심동체로 황소 눈알을 끔벅거리면서 외면하였다.

한동안 괴리씨는 Y만 보면 걱정이 태산 같았었다. 자식 하나를 세상에 내어 놓았더니 부랑아로 떠돌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괴리씨에게는 묘수가 없었다. 괴리씨가 처음 문학을 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함께 결심한 게 더 있었다. 돈 벌지 않겠다, 가 그 하나였고, 정치, , 관직 이런 것과는 담을 쌓고 살겠다, 가 그 둘이었다. 그 결심들을 충실히 실천한 덕분이라기보다는 괴리씨가 본래 모자란 탓이겠지만 괴리씨는 돈도 권력도 없었다. 하지만 살다 보니 어딜 가나 필요한 게 돈이었고 절실한 게 백이었다. 괴리씨는 자식만 주절이 낳고 밥도 몸 먹이는 흥부나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요새는 공해가 심해 제비도 날아오질 않았다. 그러다 보니 괴리씨가 그런 식으로 유기한 작가·시인들의 수가 꽤 되었다. 괴리씨는 그들이 혹시 연락해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런데 Y는 너무 자주 찾아주는 쪽이었다. 당연히 술은 괴리씨가 샀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독자가 하나 둘 개미들처럼 꼼지락거리며 다가왔다. 독자가 Y의 무엇을 이해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여하튼 문단이 소금을 뿌리자 독자가 소위 집밥을 차리다가 간 맞추는 데 썼던 것이다. 시 강좌를 하면 학생이 꾀었고 낭송을 하면 청중이 들었다. 조금씩, 서서히. 시집의 독자도 그렇게 불어났다. 그래서 시집 내는 수가 잦더니 어제 새 시집을 하나 들고 괴리씨를 찾아 왔다. 시는 한창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일상의 언어 그 자체에 시가 푹 가라앉아 있었다. 요란한 율동은 없었으나 이 삭막한 세상에도 작은 신명들이 있다는 듯 삶의 언어가 졸졸졸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이 잔잔한 생기를 띠고 반짝이고 있었다.

괴리씨는 시집을 잠시 접으며 고개를 들고 물어보았다. 독자가 좀 있나? 500명 정도 고정독자가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보들레르보다 낫구먼. 역시 한국은 시의 왕국이야. 그러나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여전히 그는 타닥거리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었다. “잘 견디시게.” Y는 떠나갔다. 저녁에 괴리씨는 인터넷에서 Y가 올린 글을 읽었다. 낮에 둘이 만났다는 얘기였다. Y는 그 글에서 괴리씨가 잘 버티라고 격려해 주었다고 적었다. 버티라고 했다라고라? 괴리씨는 Y가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창조문예』, 2016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