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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시인 - 정현종

비평쟁이 괴리 2024. 1. 12. 10:23

1.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정현종 시인은 신천옹이다. 넓은 의미에서 모든 시인이 그러하지만 정현종 시인은 특히 그렇다. 그 증거는 그의 시에 있다. 그는 한국의 대부분의 시인들이 고통을 토설할 때에 행복을 노래하고, 그럴 권리를 거듭 주장하였다. 그것은 그가 낙원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정현종이 전하는 낙원의 기억은 그러나 인간의 언어로 발설될 수가 없고 인간의 지능으로 해독되지 않는다. 그것을 전달하는 매질은 언어이되 언어의 형태로서가 아니라 천상적 삶의 물질적 실물들로서 나타난 것들이다. 천상적 생의 형상이란 삶의 적나라하고 구체적인 실상으로부터 오는 실감을 담았으되 그것들을 담뿍 소화하여 맑게 정화하는 운동 그 자체로서 드러난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그것은 곧 가장 깊이 드나들면서도 또한 가장 편안한 숨결의 운동이다.
3. 
때문에 정현종의 시는 무엇보다도 존재들 사이의 화응과 교감을 축복한다. 화응과 교감은 존재가 지상의 때를 벗고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교감은 무척 꾀까다로운 활동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순적인 활동들의 복합태로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교감이란 이질적인 존재들 사이의 자유로운 교섭과 넘나듦을 뜻한다. 한데, 서로를 그렇게 가볍게 통과하는 것은 원래 상호 작용하지 않는 것들이다. 과학은 모든 다른 물질들과 상호작용하지 않는 것들을 암흑물질이라 부른다. 서로를 관통하려면 상호작용하지 말아야 한다. 상호작용하면 충돌이 발생한다. 그런데 교감은 상호작용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관통하는 것이다.
4.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교감은 충돌의 사건을 그대로 수용하여 그것을 소통의 운동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그러니 교감은 “고통의 축제”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로부터 낙원의 기억은 지상의 율동으로 변신한다. 정현종의 시는 고난의 연속이었던 한국의 역사적 현실에 적극적인 생기를 불어넣는다. 삶 그 자체로부터 발원한 생의 리듬을 깨움으로써. 실로 시인은 지상을 낙원처럼 살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5. 
정현종은 날개가 엷은 신천옹이다. 그 날개는 잠자리의 그것처럼 신경섬유가 환히 비치는 그런 날개로서, 그의 시가 매우 솔직한 마음의 표출임을 그대로 가리킨다. 그의 시는 허심탄회하고 화통하다. 정현종 시의 저 생기는 그의 허심탄회한 내면으로부터 솟아난다. 원래 내면이 숨어 은신한 별도의 주관의 영역이라면, 정현종의 내면은 그런 내면이 아니다. 그의 내면은 숨김없는 내면, 외부와 작란하는 내면, 내외가 없는 내면이다.
6. 
그러나 이 순결한 시인이 지상적 삶의 전체적인 방향을 돌이킬 능력은 없다. 그는 다만 돌이켜야 할 절실성을 일깨울 뿐이다. 어쨌든 그건 새로운 자각이다. 쓸쓸한 자각이다. 그런 자각을 유발한 것은 지구적 규모에서의 환경의 점차적인 악화라는 기막힌 사태이다. 시인은 전 세계가, 그리고 전 세계인이, 욕심에 도취해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는 채로, 자기 생의 기반을 파괴해 ‘절멸’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데에 절망하고 한탄한다. 
7. 
그러나 시인의 체질이나 다름없는 천상적 삶의 생기에 의해서, 시인은, 세계의 재앙을 일깨우는 과정 속에 그의 시가 세계의 오염물을 빨아들여 특별한 연금술로 반죽해 각성의 피와 살과 신선한 공기를 배출하는 정화 장치가 되길 소망한다. 이산화탄소를 먹고 산소를 뿜어내는 나무처럼 말이다. 가만히 읽어 보면, 정말 정현종의 시 한 편은 그대로 한 그루의 나무이다. 작고 큰 나무들, 널찍하고 길쭉한 나무들이다.
8. 
탐욕의 자물쇠로 갇힌 세계의 방으로, 틈새가 보이지 않는 데도 빛다발이 쏟아져 들어와 문득 탐욕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풀어버리게 하고, 저 빛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한다. 그것은 저 빛이 탐욕 덩어리들 사이사이에서 새나와 용출하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듯이 말이다. 저 빛은 나쁜 세상 속의 기쁜 소식이다. 모든 나무에는 그런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정령이 산다. 시력 50년 동안 정현종의 시세계는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 그 가운데 결코 변하지 않은 건 그가 지혜 많은 정령처럼 살아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