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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저 순백의 치자꽃에로 사방이 함께 몰린다. 그 몰린 중심으로 날개가 햇빛에 반사되어 쪽빛이 된 왕오색나비가 내려 앉자 싸하니 이는 향기로 사방이 다시 환히 퍼진다. 퍼지는 그 장엄 속에선 시간의 여울이 서느럽고 그 향기의 무수한 길들은 또 바람의 실크자락조차 보일 듯 청명청명, 하늘로 열려선 난 그만 깜깜 길을 놓친다. 놓친 길 바깥에서 비로소 破精 을 하는 이 깊은 죄의 싱그러움이여 ! - 고재종, 「장엄」(『그때 휘파람 새가 울었다』, 시와시학사, 2001) 서정의 극점을 비추는 시다. 극점이 보인다는 것은 서정의 표준이 아니라는 뜻도 된다. 서정을 ‘자기의 순수한 제시’라는 말로 요약한다면, 이 시는 그 자기 표현의 끝에서 문득 자아의 소멸을 겪는다. “저 순백의 치자꽃..
심사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박용래 문학상이 오직 그만의 것으로 가져야 할 성격에 대해 조율하였다. 박용래 시인은 전통적 서정을 특유의 절제되고 압축된 물질적 이미지로 빚어 반짝이는 언어의 주렴을 드리우는 데 누구도 모방하지 못할 경지를 이룬 분이었다. 또한 박용래 시인은 문단의 잡음에 초연한 채로 오직 자연에 대한 사랑과 시에 대한 열정만을 염결히 품었던 분이었다. 심사자들은 박용래 시인 특유의 시적 성향과 시에 대한 소년같은 열정이 수상작 선정에 핵심적인 기준으로 놓여야 한다는 데 함께 동의하였다. 이러한 관점에 입각해 90여권의 시집을 검토한 결과, 『풀잎 속 작은 길』(나태주), 『들꽃 세상』(송수권), 『산시』(이성선),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허만하), 『반쪽의 슬픔』(홍희표) 다섯 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