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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지난 달 끝무렵, 경주에서는 시인 정일근이 화가 김세원과 함께 『경주 남산 시․판화전』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경주 남산은 이름모를 불적들이 들풀처럼 가득 번져있는 산이다. 그 불적들만큼 온갖 전설들이 그 산에 둥지를 트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곳에서 모임을 가지고 나랏일을 의논하면 반드시 성공하였다는 산, 박혁거세가 그 기슭에서 났고, 또한 헌강왕 때는 산신이 현신하여 나라 멸망을 경고했다는 산이 바로 남산이다. 영화와 패망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는, 아니 탄생으로부터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내력들이 중중첩첩으로 포개져 있는 이 산을 두고 시인이 노래를 왜 지었겠는가? 내력이란 단순한 역사적 사실들의 진행이기 이전에 마음의 집단적 발화이고 굽이치는 소망의 강줄기인 것. 시인은 남산의 불적들이 저마다 머금..
오랫동안 한국시가 낮은 포복을 계속하고 있어서인가? 새삼 시의 변화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찰나 같은 인생에서 얼마나 달라질 게 있으랴? 그러나 예전에 어느 시인이 노래했듯, 달라지지 않으면 “까마귀가 된다.” 완성의 순간에 말이다. 또 어떤 시인은 “그림자를 남기지 않을” 것을 강조하였다.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 것이 실은 찰나 같은 인생을 지나 시대들을 이월하며 끝없이 다른 울림을 갖는 시적 장치를 내장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김승희씨는 예전의 화려했던 수사를 생의 부정성 쪽으로 강력하게 잡아 당기고 있다. 그러자 그 전에는 난분분하던 이미지들이 광기의 천조각으로 펄럭이고 있다. 대지에 묶인 채로 허공으로 비상하려고 몸부림치면서. 이 몸부림에서는 핏물이 뚝뚝 흘러내린다. 그럼에도 이 몸부림 속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