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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의 『저녁의 구애』 본문

울림의 글/소설읽기

편혜영의 『저녁의 구애』

비평쟁이 괴리 2011. 10. 14. 04:51

편혜영의 저녁의 구애가 올해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작가로서는 이 결정이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그는 등단 이후 꽤 오랫동안 주목을 받지 못한 채로, 고독한 행군을 이어 왔다. 그러다가 요 몇 년 사이에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고 그 리듬이 가속되는 상태에서 동인상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아래는 동인문학상 수상작 선정 이유서이다.

편혜영의 소설이 현대사회의 익명성과 인간 소외에 대해 고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익숙한 주제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가 택한 행로를 초군초군 헤쳐 나갔다. 그리고 저녁의 구애에 이르러 마침내 그만의 시각과 어조로 그 주제를 완전히 환골탈태하였다. 무엇보다도 군더더기 없는 플로베르적인 절제로 최대의 소설적 경제를 이끌어내었다. 그 대가로 그의 작품들은 깔끔한 외양 속에 가장 농밀한 어둠의 밀도를 품게 되었다. 그 어둠은 오로지 흑색인 어둠이 아니라 수천의 채도(彩度)로 뒤엉킨 어둠이었다. 모든 삶이 철저히 자동 처리되는 기계도시를 움직이는 건 카프카의 상부도 오웰의 대형도 매카시의 재앙도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내면의 심사라는 걸, 그 안에서 몸부림치는 인간의 잔혹성과 비겁함과 집요함과 자포자기의 유혹과 파괴 충동과 생존 본능의 배합과 정련의 은밀하고도 끈덕진 작동이라는 걸 그의 소설은 보여주었다. 그럼으로써 독자는 어느새 재앙의 주체가 된 자신을 발견하고 동시에 새 삶을 찾을 주체도 자신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그의 소설은 저주가 아니라 모험으로의 초대이다. 스스로를 혁신하면서 세상을 바꿀 모험인 것이다. 독자들이여 어서 그 안으로 잠입해 보시라. 어둠인 듯, 박명인 듯.” (2011.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