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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 없는 독백, 마멸되는 인생 -채희윤의 『별똥별 헤는 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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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 없는 독백, 마멸되는 인생 -채희윤의 『별똥별 헤는 밤』

비평쟁이 괴리 2022. 12. 13. 20:09

어떤 소설은 눈으로 읽지 않고 귀로 들어야 한다. 대체로 그런 소설들은 빡빡하게 시작한다. 풍경을 묘사하지도, 사건을 터뜨리지도 않는다. 어둠이 내린 길가의 불꺼진 창문으로부터 새어나오는 것인 양, 어떤 말소리가 독자의 귀를 멍멍히 두드리기 시작한다. 들리는 얘기로 보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한데, 실은 거의 독백과 다름없다. 왜냐하면 그 말이란 게 한없이 이어져 소설이 끝날 때까지는 결코 미지의 상대방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생활의 어려움에 지쳐 저녁의 문학로에 발을 들여놓은 독자는 잠시 후회를 할지 모른다. 그가 원한 건 생활의 지겨움을 잊게 해줄 만한 무엇이었다. 그런데, 겨우 뜻도 모를 넋두리라니……. 하지만, 당신이 빡빡함을 참고 이야기를 좀더 듣고 있게 되면 당신은 아마도 기묘한 전율 속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 말들이 어떤 신나는 모험이나 아득한 사랑과도 무관하지만, 그러나, 바로 독자 당신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 찌들어 벌레처럼 변해버린 당신 말이다. 그것은 당신 삶의 지긋지긋함에 대해서 말한다. 아니, 그 이상이다. 소설은 그것을 폭로하는 대신에 질문투성이로 만든다. 그 지긋지긋함 속에 숨어 있는 파득이는 열정을 동시에 생각게 한다.
채희윤의 『별똥별 헤는 밤』(세계사, 1995)은 그런 소설들의 모음이다. 물론 작가가 이런 빡빡함을 자청한 데에는 그 이상의 깊은 뜻이 있다. 우선 그의 문체는, 아니 소리체는 이야기의 내용과 긴밀히 조응한다. 그의 이야기는 같은 출신인 두 존재의 삶을 엮어 짠다. 하나는 뛰어나지만 좌절하고 마는 행동가들의 광태적 삶이며, 다른 하나는 평범한 채로 세상 속에 끈질기게 적응해나가는 일상인의 삶이다. 전자는 개천에서 난 이무기고, 후자는 개천에 널린 미꾸라지들이다. 대부분의 일반적 소설들은 전자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과 모험 혹은 방황과 귀향 혹은 산화에 대해 말한다. 채희윤의 소설은 정반대로 나간다. 화자는 세상에 용케 적응해온 자신의 인생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생활의 톱니바퀴에 끼어 끝없이 마멸되어가는 것이자 무의미한 죽음으로의 일보 전진일 뿐이다.
채희윤 소설의 그 대답 없는 독백은 마멸되어가는 인생과 등가이다. 이 폭폭한 인생이라니…… 화자는 불현듯 근원을 알 수 없는 욕망 속에 사로잡힌다. 춤이거나, 무지개거나, 시거나. 그것이 저 행동가들의 솟구침에 견줄 만한 것인가? 그것이 그의 마음을 더욱 어질러 놓는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자신의 인생에 대해 저항하고 있다는 것의 증거가 아닐까? 더 나아가 그것은 행동가들의 수직적 솟구침이 일상으로부터의 도피일 수도 있음을 반성케 한다. 화자는 바로 그것을 독자에게 말한다. 그와 너무도 닮은, 지친 영혼인 당신에게 말이다.
󰏔 1995. 10. 9,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