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김정환의 「목구멍」 본문

울림의 글/시 한 편 읽기

김정환의 「목구멍」

비평쟁이 괴리 2011. 8. 13. 23:02

목구멍

 

옛날에

나를 켕기게 만들던

우리 식구 목구멍 하나 둘 셋

그것을 채우던 내 노동

일년 이십년 한평생

뼈빠지게 고생하던 옛날에

울분 삭히던 가슴에

쐬주 고이던

뻥 뚫린 구멍 하나 둘 셋

지금은 내가 채울 목구멍이

세상 도처 내 몸보다 크구나

제 혼자 허한 목구멍

자본가의 거대한 목구멍

정치가의 거대한 목구멍

역사의 거대한 목구멍

그러나 켕기지 않네

채우기에 노동자 이 가슴

모자랄 뿐이네 그것이 노동자 나를

구멍보다 거대하게 키우고

성장이 넘쳐 목구멍도

뒤집히고, 경사나겠네

 

(김정환 시집, 노래는 푸른 나무 붉은 잎, 1993, 실천문학사)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가난을 잊고 살고 있다. 80년대에 소비사회가 시작되고 90년대에 문화 산업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일상적 향유는 무람없는 일이 되었다. 봉지쌀을 사야만 했고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국가적 강요에 시달려야 했던 가까운 과거는 까마득한 옛날이 되어 버렸다. 세상이 좋아지긴 좋아진 것인가? 그러나 갈수록 각박하고 야박해지는 치열한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가난의 문화가 실종되었을 뿐이다. 그 실종 속에서 결핍의 의식은 기승한다. 우리는 날마다 자신의 부당한 결핍을 저주하고 타인의 부를 시샘하며, 샘을 이기지 못해 과잉 소비에 매달린다. 그래서 가난도 재빨리 소비된다. 3D 업종을 기피하고 카드 빚에 쫓겨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가난을 소비하는 방식들이다. 김정환의 시가 함축적으로 지시하고 있는 가난의 문화는 단순히 가난에 대해 절망하고 울분을 터뜨리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가난한 자가 견뎌야 하는 내핍의 윤리만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절망과 울분과 윤리를 함께 아우르면서 그것들을 통째로 모종의 힘으로 변화시킨다. 삶을 이겨내는 힘을. 나를 집어삼기는 세계를 거꾸로 빨아들이는 힘을.

덧붙이는 말: 얼마 전, 나는 최종천의 노동자의 세계관을 소개했었다. 노동자의 세계관이 일을 함으로써 세계와 자신을 함께 변화시키는 자의 세계관이라면, 가난의 문화는 그 노동자의 세계관이 정련되는 제련소이다. (쓴날:2002.07.26, 발표: 주간조선, 1715, 2002.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