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현대시 신인상 (2)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이영희씨의 시는 시의 도반(道伴)들에게 썩 미묘한 문제를 제기한다. 시가 현실에 대한 비유라는 건 토론을 요하지 않는 일반적 정의 중의 하나인데, 이씨의 시는 그 정의와 대각선의 방향으로 어긋나 있는 것이다. 이씨의 시를 저 정의의 순수한 시각으로 독해하면 시의 풍경은 별로 사실스럽지도 않고 그에 붙는 ‘설명’들도 조급하기만 하다. 그러나 거꾸로 비추어 보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난다. 다시 말해, 시가 현실의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 시의 비유라고 읽는 것이다. 그렇게 읽으면 속이 개에 불과한 거죽의 인간들이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마냥 서성이는” 모습으로 목줄이 매인 채로 “어둡고 좁은 지하차도를 지나” 넘어졌다 일어서고 밀려갔다 밀려오길 반복하는 치욕과 불안의 실상을 포장하는 가운데, 러브..
박헌규의 시는 돌발적인 상상력을 통해 의식을 분해하고 그 분해된 의식 각각에 고유한 형상과 내용을 주어 저마다 제가끔의 방식으로 자라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그의 의식 세계가 펼쳐지는 장소인 시는 해독하기가 쉽지 않은 굵은 의식 줄기들이 매우 혼잡히 뒤엉켜 있는 듯한 형국을 이루는데, 그러나 의식들 사이를 흐르는 윤활한 정서가 있어, 마치 참기름에 잘 버무러진 시금치 무침처럼, 제각각의 의식들을 앞으로 있게 될 잠재된 큰 의식의 세계로 통일시키고 있다. 그 참기름의 역할을 하는 정서적 분비물은 연민에 흡사한 것인데, 그러나 시 바깥으로부터 시에 내려쬐는 고등의식의 연민이 아니라 시 내부의 의식들 자체로부터 분비된 자기 연민에 가까운 한편, 단순히 자신의 외로움과 폐쇄성을 위무하기보다는 근처의 다른 의식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