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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오늘(1995년)의 한국 소설은 여전히 회상의 형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현실의 반성적 문제틀로서의 소설이 문득 과녁을 잃어버렸을 때 과거로의 후퇴는 거의 피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불가피함이 그렇듯이 그것 또한 충동적인 몸부림에 속한다. 그곳에는 미리 수락된 패배와 제 살을 파먹는 허무와 그리고 그것들을 완강하게 가리우는 자기애가 풀릴 길 없이 잔뜩 뒤엉킨 채로 시커먼 화장독에 썩어가는 것이다. 한동안 넋두리조의 방황과 옹고집류의 자기 옹호의 상투적 도구로 소설이 전락해 온 것은 그런 사정 아래에서였다. 그 상투성은 과거로 미래를 미리 추인한다. 영원히 고착된 그것으로 미래를 체포하고 꽁꽁 가두어버리는 것이다. 지난달의 작품을 뒤돌아보는 이 자리에서 이 신물날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
확실히 생명복제의 시대이다. 지난번에 숙제가 너무 많다고 비명을 질렀더니, 실무팀 쪽에서 재빨리 클론 두 분을 붙여주었다. 덕분에 문학 부문을 둘로 나누고 첫 회 선정자들이 각자 신임 위원 하나씩 꿰차고(?) 딴 살림을 차렸다. 하지만 신참자의 개성이 어찌나 강한 지, 이번의 선정에는 신임 위원의 의견이 100% 관철되었다. 선정의 안목이 높아졌다면 그것은 출판인회의의 공이고 선정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신임위원의 탓이다. 면책한 구닥다리는 그저 양측에 감사드리는 바이다. 이번에 특기할만한 점은 좋은 외국 소설이 많았다는 것. 그러나, 정작 선정된 것은 2종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것은 선정자들의 한국문학에 대한 집착이 광기의 수준에 다다랐기 때문이 아니라, 번역에서 나름의 문제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일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