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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아래 글은 1990년대 초엽에 씌어진 것이다. 다시 읽으면서 오늘날 미만한 '내 이야기'들과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아니 좀 더 과감하게 말해, 21세기적 경향의 기원이 이 즈음에 꼬물거렸는데, 그러나, 그 진화적 양태는 예측불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의심이 부쩍 인다. 당시에는 이런 소설들의 유형을 '후일담문학'이라고 불렀었다. 다른 명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소설가 자신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 부쩍 늘고 있다. 소설가의 과거와 현재의 대비가 거의 상투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한 형식이 되고 있고 그 밑을 흐르는 주 음조는 탄식이다. 탄식의 원인은 뻔하다. 옛날이 좋았다는 것이다. “지난날의 눈은 어디 있는가?”라고 소설가들은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가? 그..
구효서의 『동주』(자음과 모음, 2011)는 오랫동안 윤동주에게 씌어졌던 상투적인 이미지를 벗겨버리는 과감한 시도를 하고 있다. 요컨대 작가에 의하면 윤동주는 ‘민족시인’이라기보다, ‘세계시민’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해, 조선인이 됨으로써 세계인이 되기 위해 깊이 고뇌한 사람이다. 그런 윤동주를 작가는 ‘언어’에 근거해서 상정할 수 있었는데, 즉, 그의 모어는 조선어이지만, 그가 익힌 언어는 조선어, 중국어, 일본어, 영어라는 것이다. 언어가 정신의 거처라는 생각은 꽤 설득력 있는 생각이며, 이에 근거해서, 작가는 아이누 여자의 야성성-각 인물들의 민족성-윤동주의 세계성이라는 구도를 잡고, 새로운 윤동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구도의 각 항목들은 적당했으나, 그 구도의 각 항목들을 잇는 연결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