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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탄생과 근대적 주체의 자기 환상 -김승옥의 「 무진기행」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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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탄생과 근대적 주체의 자기 환상 -김승옥의 「 무진기행」

비평쟁이 괴리 2022. 5. 21. 14:53

김승옥은 419세대의 선두 주자에 속한다. 419세대는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세대이다. 그 이전까지 한국인에게 삶은 바깥으로부터 난입한 재앙이었다. 35년간의 식민지의 역사, 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도적처럼 닥친해방, 우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의한 분단과 전쟁, 그리고 독재로 이어진 20세기 전반기의 한국사에서 한국인의 삶 은타인에 의해그리고타인을 위해저질러진타인의삶이었다. 한국인은 어느 때에도 어느 곳에서도 자신이 인간임을 확인할 수 없었다.

한국인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준 사건, 그것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린419학생혁명이었다. 4 ∙ 19와 더불어 한국인은 마침내사람으로서, 다시 말해, ‘창조적 주관 (creative subjectivity)’으로서 살기 시작하였다. 문학에 있어서 이러한자기의 회복’ 은 언어의 완전히 다른 사용을 통해 나타났다. 김현에 의하면 419세대는한국어로 배우고 한국어로 사유하고 한국어로 글을 쓴” 세대이다. 자기 말을 가지고서 그것을 생활의 발견이자 인식의 지렛대며 문화의 표현으로서 사용하게 된 것이었다. 이때 언어는 단순히 뜻을 나르는 수레로서의 도구의 역할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언어 자체가 한국인의 인식과 동경이 표출되는 떨림판이 된다.

서양의 유럽문학사가개인주의 사회의 도래를 느끼기 위해 마리 보(Marivaux)를 필요로 했듯이 한국문학사 역시 자주적 인간을 느끼기 위해 김승옥을 필요로 했다. 조르쥬 풀레(Georges Poulet)가 마리보에게 붙여준 표현 그대로 김승옥의 소설도 한국어에서의감각의 탄생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가을 햇살이 내 에나멜 구두 콧등에서 오물거리고 있었다”(「 생명연습」 )라든가언젠가 여름 밤, 멀고 가까운 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를, 마치 수많은 비단조개 껍질을 한꺼번에 맞비빌 때 나는 듯한 소리를 듣고 있을 때, 나는 그 개구리 울음소리들이 나의 감각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 수없이 많은 별들로 바뀌어져 있는 것을 느끼곤 했었다”(「 무진기행」)와 같은 묘사는 한국문학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이었다. 419 학생혁명이 민주주의의 혁명이었다면 김승옥의 소설은감수성의 혁명”(유종호)이었다.

이 감각적 언어의 탄생 속에서 김승옥의 소설은 한국인의 자주성을 몸의 차원에서 확인하는 작업을 행한다. 그것을 작가는자기세계’라고 언명한 바 있는데, 가령, 「서울 1964년 겨울」에서서대문 근처에서 서울역 쪽으로 전차의 도로리가 내 시야 속에서 꼭 다섯 번 파란 불꽃을 튀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건 오늘 밤 일곱 시 이십 오 분에 거길 지나가는 전차였습니다와 같은 목격담이 오직그만의 소유’ 가 되는 것, 그것이자기 세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무진기행」은 이자기세계의 추구가 하나의 헛되고도 헛된 환상임을 파고 들어간 작품이다.

‘무진’의 뜻은 안개 포구. 무진의 명산물이라고 지칭되고 있는 ‘안개’는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는 분위기로서,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 들에게서 새어 나오는 절망감과 자기염오(厭惡) 그리고 세상의 중심부로 진입하고자 하는 집요한 욕망과 끈덕진 모의(謀議), 욕망과 음모의 실패가 낳은 가중되는 절망과 원한이 복합적으로 엉켜 있는 끈적끈적하고 칙칙하며 악착같으면서도 처연한 그런 기분을 가리킨다. 그 안개 속에 작품의 화자 가 옛날에 있었다. ‘는 용케 그곳을 탈출하여 서울로 진입하고 제약회사 회장 딸인과부와 결혼하였고 부인의 후광 아래 회사의 고급간부로 출세한다. 그러나 그는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하여튼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할 때,” ‘무진에 몇 차례 다녀왔었다. 이번에도전무로 승진하기 전에긴장을 풀고 오라는 아내와 장인의 권유로무진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고등고시에 합격해 무진의 세무서장이 된 고향 친구와 서울에서 부임해 온하인숙 선생과 하 선생을 짝사랑하는 고향 후배인박 선생을 만난다.

이 세 명의 인물은 각기무진에 대한의 감정을 비추는 거울 들이다. ‘무진을 서울의 복사본으로 이해하는 인물이다. 그는 무진에서 공부했고 무진에서 출세했으며 서울에서 출세한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무진에서 거들먹거리며 산다. 반면하인숙은 무진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들이 마지막으로 내몰린 곳임을 극명하게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서울에서 무진으로 내쫓겼고 무진을 서울의 대용물로 삼기 위해 ‘조’와 결혼하려 하며, ‘를 만난 이후에는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를 유혹한다. ‘박선생은 무진의 무기력을 그대로 반영하는 인물이다. 그는 무진에서 태어나 교원자격고시에 합격해 교사가 되었으나 학교에서는사범대학 출신들의 위세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고, 그리고 바깥에서는 출세한 선배인에게 눌려하선생’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다. 그러니까박 선생의 외곽을 형성하여가 무진을 탈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그 탈출의 허위성을 암시한다. ‘는 무진이 서울의 조악한 복제본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박 선생은 서울과 무진 사이에 놓인 근본적인 간극을 확인시킨다. 그러나 동시에박 선생처럼 살지 않으려면속물이 되어야 하며, 동시에박 선생처럼 사는 것은타인은 모두 속물들”이라고 흉보는속물이 되고 만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한편하인숙’은 옛날의를 그대로 빼 닮은 분신이다. ‘하 선생은 무진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하면서도 무진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는 그녀를서울로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하는와 하룻밤을 같이 잔 후에자기 자신이 싫어져서”서울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하 선생에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쓰지만 그것을 찢어버리고 서울로 다시 떠난다.

바깥에서 보면 우스꽝스럽고 안에서는 절박하기 짝이 없는 이 인물들의 안쓰런 관계와 행태를 통해 이 작품이 독자에게 생각케 하는 것은, 소외당한 사람들의 슬픈 사연이라기보다는, 1960년대 한국인 일반 혹은 더 나아가 근대인 일반의 인간적 상황과 삶의 형식일 것이다. 독자는 그것을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그에 대한 대답을 궁리해 볼 수 있으리라.

‘나’는 서울에서 힘들 때마다 왜 무진으로 가는가? 그토록 빠져나오려 애썼으며 마침내 탈출에 성공했으니, 다시는 돌이켜 볼 까닭이 없는 그곳을. 아내와 장인에게 그것이 휴식을 뜻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서울 역시 실은무진과 다를 바 없는 공간임을 암시한다. 반면 ‘나’에게는 그것은 복합적이다. ‘가 무진에 와서 다시 보고 느끼는 것은 탈출에의 욕망이다. ‘는 그것을 무진에 와서 재경험한다. ‘에게 무진은 결코 휴식의 터전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 곳에 오는가? 탈출에의 욕망을 다시 불태우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올 리가 없을 것이다. 아내와 장인에 의해 슬그머니 암시된 것이 여기에 와서 비교적 분명한 윤곽을 얻는다. 서울 또한 무자비한 경쟁과 집요한 음모와 투쟁의 장소라는 것. 그리고 무진은 서울로부터 동떨어진 채로 동시에 서울의 압축판이라는 것. 그래서 무진에 와서 서울의 욕망을 단순화되고 압축화된 형태로 재경험함으로써 서울에서의 투쟁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전염병을 이기기 위해 백신을 맞듯이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는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그 욕망과 음모가 허망한 것임을 암시한다. 서울 또한 무진과 마찬가지로 탈출의 장소라면, 서울에서 탈출해 어디로 갈 것인가? 물론 서울로부터의 탈출이란 곧 서울 안에서의 신분적 상승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그 신분적 상승의 높이는 도대체 어디까지 인가? 제약회사 회장까지? 아니면 그보다 더 높은 무엇? 작품이 인물들을 통해 암시하는 것은, 탈출하는 자는 언제나 탈출하는 행위만 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도달’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어떤 지위에 오르더라도 그는 다시더 높이의 욕망 속에서 끝없는 투쟁 속에 빠져들 뿐이다. 이것은 처음으로 자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 1960년대 한국인의 대표적 경험이면서 동시에 근대인 일반의 보편적 경험이기도 하다. 「 무진기행」은 그것을 감각이 곧 사유가 되는 언어로써, 다시 말해, 가장 구체적인 삶의 결을 느끼게 하는 문체로서 그러한 근대인의 보편적 조건을 생각케 한다. ( 2004. 3, KOREANA)

 

※ 이 글은 작년 여름에 KBS에 발표한 글, 「 김승옥의 「무진기행」」 (이 블로그의 주소로는 김승옥의 「무진기행」 (tistory.com)) 과 거의 동일하다. 그렇다는 것은 김승옥 및 4 ∙19세대에 대한 나의 인식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달라진 게 있다면 분석의 초점이 이동했으며, 좀 더 감각적으로 느끼려고 애쓰고 있다는 정도가 될 것이다. 오른쪽 상단에 붙인 표지 그림은 내가 처음 김승옥을 접했던  『김승옥 소설집』( 샘터문고, 1975)의 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