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의 글/소설읽기

감염병 사태의 볼록거울 - 김희선의 『247의 모든 것』

비평쟁이 괴리 2024. 7. 25. 08:18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5회 일곱 번째 독회에 대한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지난 5년 동안 전 세계는 ‘코로나 감염병 사태’로 독한 몸살을 앓았다.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었고, 사망자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감염으로 인한 후유증도 심각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여러 차례의 변이를 통해 약화되어 이제 풍토병(엔데믹)으로 정착했다는 선언이 나온 지가 1년이 넘었는데, 며칠 전 신문에는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에 걸렸다는 보도가 실렸다. 
‘나무위키’에 의하면 코로나를 다룬 문화물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만화(웹툰 포함), 영화, 드라마, 게임, 노래 등에서 상당수 배경으로 쓰였는데, 사태 자체를 다룬 작품은 몇몇 드라마에서 단편의 에피소드용으로 제작된 게 보인다. 소설이 안 보여서, ‘아마존’을 뒤지니, 프랑스에서 독립출판된 한 소설이 나오는데, 포탈에서 자체 평가한 바에 의하면 개연성이 희박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희선의 『247의 모든 것』(은행나무, 2024.05)은 ‘코로나 사태’를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소설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만 이 소설은 ‘코로나 사태’를 사실주의적 관점에서 추적한 게 아니라, 일종의 정신적 볼록거울로 크게 확대해 ‘니파바이러스’를 둘러싼 미래 세계의 소동으로 만들어 그렸다는 게, 얼마 전의 재앙에 대한 해부라는 인지에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꼼꼼히 들여다보면 이 소설 안에는 코로나 사태 때 우리가 직접 겪고 보았던 거의 모든 사건들과 거의 모든 반응들이 총망라되어 압축적으로 동원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사람들의 공포와 원인에 대한 각종 억측과 공격,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불신과 집단 분리 충동의 격화와 발병위험이 표지된 집단에 대한 매도와 위협, 당국의 점점 강화되어 간 조치와 그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 슈퍼전파자에 대한 조치와 사람들의 공포와 분노, 그에게 일어난 인간적인 비극, 감염에 대한 미신들의 창궐과 객관적 관찰의 무기력, 그리고 사태의 정치적 이용들, 희생양 만들기를 통한 공동체의 단결을 강화하기, 더 나아가 이 사태 내내 동시적으로 전개된 인간의 동물에 대한 편견과 학대, 요컨대 인류세의 종언을 예고하는 징후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품 속의 ‘니파바이러스 사태’가 ‘코로나 사태’의 은유라는 서술상의 단서들이 있다. 하나는 미래 사회에 대한 묘사가 오늘날의 현실 묘사와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독자는 작품을 읽는 도중에 특별한 ‘사이파이’적 감각을 느낄 수가 없다. 더욱 결정적인 또 하나의 단서는 ‘구제역’을 병발적 사태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구제역’은 바로 코로나 사태의 이전과 이후에 걸쳐져 있는, 즉 코로나 사태를 둘러싸고 있는 사태이다. 세 번째 단서. ‘니파 바이러스’ 자체가, 「제 7장. 다큐: 순가이 니파 마을의 비극」을 통해 암시되었듯이, 1998-1999년에 발생한 것으로 파악된 감염병으로서, 최근 아프리카와 베트남에서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확산중이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주로의 추방’이라는 사건을 제외하면 모두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에 일어난 일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단서들을 놓고 보면, ‘신종 니파바이러스 사태’는 ‘코로나 사태’의 은유이다.
다만 작품 속의 사태는 실제의 코로나 사태보다 훨씬 과장되어 있다. 즉 전자는 후자의 볼록 거울이다. 왜 이런 볼록 거울을 비출 생각을 했을까?
과장의 기본 양상들을 살펴보자.

(1) 감염병 사태로 인한 비극을 강화함으로써 인간들의 비참을 극대화하였다.
(2) 감염병 사태에 대한 사람들의 허둥지둥을 광기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3) 정치적 통제를 강화하면서, 이를 권력자들에 의한 권력의 무분별한 전용이 야기하는 재앙을 환기시켰다.
(4) 정치적 이용을 음모론으로 확대했다.

볼록거울은 실제의 모습을 일그러뜨린다. 즉 볼록거울의 일차적인 의도는 풍자이다. 이 풍자는 과장이 극심해질 때, 희롱과 희화(戲畫)로 발전한다. 이는 특정 세력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관여자 모두를 단죄의 심판대에 올려놓는다. 즉 인간과 인간의 역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이 소설의 핵심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인류세의 폐기가 도래한 때라는 주장이 은근히 밑바닥에서 일렁이는 것이다. 그 주장을 가장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게 ‘니파바이러스사태’에 연동시킨 ‘구제역 사태’ 이다. 
그러나 표면에서 일어나는 것은 온통 코미디이다. 풍문 속에서 일어나는 별의별 망상, 오판, 독선, 감상, 발작의 버라이어티쇼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희롱 대잔치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의사와 약사, 그리고 247(김홍섭)의 생체험에 대한 보고는 희박한 사실 요소를 반복시키면서 감성적 호소의 수액을 채우는 일에 갇혀 허덕이고 있다.
다만 우리는 이 일그러진 미래사회의 공간적 과장이 시간적 축적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작품 속의 일그러진 모습을 시간의 길이로 늘리면 그것은 인류가 스스로 초래한 재앙의 점진적인 도래를 각성시키기 위한 충격 요법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것을 이해하는 독자는 코미디를 웃어 넘기지 못하고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런 독자가 점증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