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안에 거주하는 두 ‘나’의 위상 변환- 김필아의 「메디팜의 밤」
[작품]
메디팜*의 밤
김필아
잣나무 숲에 바람 불어 머리 위 맴도는 검은 파도입니다
개들은 냄새로 기억하고 갓 태어난 아이의 울음엔 눈물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달을 거슬러 눈 아래 눈물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부드러운 양수의 맛을 기억하려는 태아처럼 나는 새벽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자는 검은 개의 꼬리에 흰 고요가 괴여있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녹아내리는 어둠에 감꽃을 꿰어 줍니다
며칠 전 화분을 들였습니다 꽃을 들이는 것은 나무의 미래를 품는 것이라 당신은 말하겠지만 나는 돌의 감정을 눌러 놓고 꼬리에 파도를 감추는 어항 속 물고기 같습니다
나는 메디팜을 붙이는 사람, 겨울밤의 어깨에 꼭꼭 눌러 붙이는 사람, 메디팜 속에서 밤의 진물 나고 수그러지고 새 지고 꽃잎 트는 아침, 그늘이 봄의 말을 합니다 꽃도 새도 봄의 풍경 닮은 말씨 나의 겨울 말씨는 싸락눈처럼 흩날립니다 푸른 입김이 피어오릅니다
감꽃 지고 여름 가는 밤에 걸어 놓습니다
* Pasta(독) 첩부제 소염 진통제
※ 시 전문의 수록에 동의해 준 시인에게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메디팜의 밤」, 그리고 함께 투고된 시 2편은 썩 이례적인 시풍을 보여주고 있다. 서정 장르 즉 시가 ‘개인 심정의 토로’(diegesis)에 속한다는 것은 저 옛날 플라톤의 삼분법(『공화국』3장 392c-398b) 이래 거의 공식으로 굳어진 정의이다. 그래서 ‘서정(抒情)시’라고 번역되었던 것이다. 그런 기본을 무시하고, 자연 풍경에 마음을 의탁해 온 한국의 시들을 특별히 ‘서정시’(‘모더니즘 시’와 구별되는 의미에서의)라고 지칭했던 국문학계의 관행은 좀 엉뚱한 데가 있다. 본래의 규정을 고려하면 통상적으로 ‘서정시’라고 지칭되던 한국시 무리는 ‘한국적 서정시’라고 정확히 명명될 필요가 있다.
한데 한국의 근대시는 서양의 장르 규정에 지배되면서도 고유한 특성을 보존한 게 있었다. 한국의 시는 기본적으로 대화성을 내장하고 있다는 점이다.(한국시의 원시성, 즉 전근대성의 온존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좀 더 탐구를 해봐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도 여러 번 언급한 적이 있고, 지난 해 출시된 한 박사학위 논문이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이단비, 『한국 근대시의 목소리와 대화성 연구 - 1920년대 시에 나타난 ‘대화적 자아’의 양태와 발화 특성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학위논문, 2023.07)
여하튼 근대시의 ‘독백성’은 21세기 들어 부쩍 유별난 현상이 된 게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달에 선정된 「메디팜의 밤」은 독백의 시가 아니라 대화의 시라는 점이, “이례적인 시풍”이라고 해석하는 소이이다. 하지만, ‘나’와 ‘당신’이라는 둘 이상의 인물이 등장하기는 하는데, 그 ‘당신’은 ‘나’ 바깥의 타자가 아니라 ‘나’ 안의 다른 ‘나’로 보인다. 즉 이 시는 대화를 독백이 품고 있다.
이는 가수 하덕규가 「가시나무」에서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라고 한탄한 것과 유사한데, 시에서는 한탄이 아니라 두 마음 성향의 대결이 눈에 띈다. 그 대결의 심각함을 첫 행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잣나무 숲에 바람 불어 머리 위 맴도는 검은 파도입니다
하나의 마음은 “잣나무 숲”에 깃들고 다른 하나의 마음은 “검은 파도”로 닥친다. 숲과 바다라는 이질적인 심상들의 어색한 공존은 이 시들의 특성이기도 한데, 이는 두 마음이 둘 다 강렬한 밀도를 품은 채로 상호 대결적이기 때문에 충분히 체감할 수 있다. ‘해일’이 덮치는 광경을 연상하면 금세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시행들은 운명을 고즈넉이 수락하고자 하는 마음과 운명을 딛고 삶의 개화를 이뤄내고자 하는 마음 사이의 대결이 이 역시 이질적인 심상들의 대비를 통해 전개되고 있다. 주제 자체는 특별히 새로울 게 없으나, 이 시를 감칠맛 나게 하는 건, 운명의 수락이 그냥 ‘포기’가 아니라, ‘분한 마음’의 축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축적 때문에 운명의 수락/개척이라는 상투적인 주제는 돌변해서 두 마음이 모두 운명의 개척이라는 성질을 갖게 된다. 그리고 두 마음의 대결은 방법론의 차이를 둘러싼 경쟁으로 바뀐다. 한 마음은 꾹꾹 눌러 참으면서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다른 하나의 마음은 의지를 개방하며 운명과 솔직한 대결을 벌이고자 한다.
시의 묘미는 바로 이 두 마음의 위상학적 지위와 기능을 변환시키는 솜씨에 있다. 이 솜씨는 쉽게 감지되기는 어렵지만 시를 느끼고자 하는 의지를 유지하고 곰곰이 새겨 읽으면 독자의 마음속에 고스란히 투영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시학』 618호 2024년 3-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