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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오감도 제1호」에서 보았듯이, 관조와 행동의 분리는 ‘한국적 서정시’에서만 진행된 게 아니다. 그것은 1930년대의 전반적인 흐름이었고,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잠시 유보하기로 하자. 우선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행동과 관조가 분리되었다는 것이 관조의 시가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의 경우처럼 그 둘의 분리와 공존을 뚜렷이 자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가령 김광균이 처음 쓴 시로 알려져 있는 「오후의 구도」의 마지막 시구를 읽어 보자. 바람이 올 적마다 어두운 커-튼을 새어 오는 보이얀 햇빛에 가슴이 메어 여윈 두 손을 들어 창을 나리면 하이-헌 追憶의 벽 우엔 별빛이 하나 눈을 감으면 내 가슴엔 처량한 파도 소리뿐1) 에서 “어두운 커튼”은 “보이얀 햇빛”과 ..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읽어 보자.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봄을 기둘리고 있을태요 모란이 뚝뚝 떠러져버린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흰 서름에 잠길테요 五月어느날 그하로 무덥든 날 떠러져 누은 꽂닢마져 시드러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없어지고 뻐처오르든 내보람 서운케 문허졌느니 모란이 지고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말아 三百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있을테요 찰란한 슬픔의 봄을1) (1934.4) 이 시 앞에서 해석은 거듭 붓방망이질을 한다. 이상하게도 여러 뜻으로 읽힌다. 좋은 시의 기본 자질이 ‘모호성’에 있다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교과서에 실린 얘기다. 그 뜻을 제대로 파악하고 제대로 전달한 교사가, 아니 평론가가 드물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
정지용의 「바다 21)」는 서정시에 있어서의 자아의 존재태를 이해하기 위한 범례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에 대한 이해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선 읽어 보자. 바다는 뿔뿔이 달어 날랴고 했다. 푸른 도마뱀떼 같이 재재 발렀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었다. 힌 발톱에 찢긴 珊瑚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가까스루 몰아다 부치고 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시쳤다. 이 앨쓴 海圖에 손을 싯고 떼었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구르도록 회동그란히 바쳐 들었다! 地球는 蓮닢인양 옴으라들고……펴고…… (1935) 이 시의 일차적인 매력은 대상의 생동성에 있다. “바다가 뿔뿔이 달아난다”는 표현이 신선하다. 그리고 이어서 이 표현을 실감시키기 위해 “푸른 도마뱀떼 같이 재재발렀다”고 비유한 게 적의하였다. 그런데 최초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