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김종호/허남준의 『인어공주 이야기』 본문

울림의 글/소설읽기

김종호/허남준의 『인어공주 이야기』

비평쟁이 괴리 2011. 8. 29. 11:43

김종호가 쓰고 허남준이 삽화를 그린 인어공주이야기(문학과지성사, 2011)는 민담 인어공주의 현대적 변용이다. 이해를 위한 몇 줄의 노트를 적어둔다.

(1) 이것은 일종의 고쳐 베끼기의 형식을 갖는다. 일반적인 고쳐 베끼기는 대체로 원본에 대한 비판적인의도를 품고 있으며, 따라서 흔히 패러디parodie’적 실천을 보여준다.

(2) 그러나 이 소설은 패러디가 아니다. 바흐찐Bakhtine의 용어를 빌리자면, 패러디가 아니라 문체화stylisation’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원본의 세계관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확장하거나 변주시키는 것.

(3) 작가의 의도는 인간 영혼의 보편적 심리를 현대의 사회적 문제로 치환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적 문제를 말하기 위해, 민담의 형식을 취했다는 것은, 작가가 그 사회적 문제에 운명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는 말이 된다. , 이 소설은 현대문명에 대한 묵시록으로 읽을 수 있다. 김종호씨는 책을 주면서, “이 책을 낭독하려고 한다는 말을 담았는데, 방금 내가 엿본 작품의 의도와 얼마간 상응한다고 생각한다. 말은 진리를 전달하려고 하고, 글은 미망을 인식케 한다.

(4) 작가가 파악한 현대 문명의 문제는, 육지와 바다의 불화의 문제로 제기된다. 그 불화는 전면적이고 회복불가능하다. 그 치명성에 의해서, 한편으로 작품은 왕자와 인어의 비련으로 한정되지 않고, 공주와 시복의 이야기, 신데렐라 이야기, 심청이 이야기 등으로 예측불가능하게 번져 나간다. 이야기는 끝이 없어도 낙원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 때문에 모험 또한 끝나는 법이 없다. 인어가 인어를 낳고, 인어가 공주가 된다. 이야기가 계속되는 한, 멸망도 도래하지 않는다.

(5) 육지와 바다의 불화는 모래유리두 이미지로 비유적 형상을 획득한다. 이 이미지들은 사실 이야기의 끝없음, 불투명성, 오리무중성을 견디게 해주고, 동시에 암시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모래는,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서 쌓이는 불화한 존재의 시체들이고, 유리는 그 불화를 화해로 돌리고자 하는 욕망이 만든 온갖 장식품들을 낳는다. 따라서 모래와 유리도 근본적 불화의 양태로 제기된다.

(6) 모래와 유리를 종합할 수 있는 어떤 이미지가 있을까? 그것은 잃어버린 눈알이다. 작가는 최종적으로 눈알을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만, ‘하나의 눈알’(진리가 하나이듯이)말이다.

(7) 허남준의 그림은 서양식 마녀 캐리커쳐와 한국 순정만화의 인물 표정을 기묘하게 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뒤섞음에 의해서, 그가 그린 인물들은 동시에, 엽기적이고 희극적이고 비애스럽다. 그들은 인간이고 동시에 마녀인데, 인간이 되려고 애쓰는 마녀라기보다는, 어떻게 마녀가 되볼까 골몰하는 인간처럼 느껴진다.

(8) 이 노트는 아직 얄팍한 인상화이다. (2011.8.29.)